13일 밤부터 시작한 북한의 도발은 이튿날 새벽까지 4시간 30분 넘게 계속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북한 군용기들이다.
군은 북한 군용기가 빠른 속도로 남침하는 상황에 대비해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20~50㎞ 북쪽 상공에 전술조치선을 설정하고 있다. 북한 군용기가 이를 침범하면 군은 곧바로 전투기를 띄워 대응에 나선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북한은 군용기가 전술조치선을 넘으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그런데도 최근 계속 공군력을 과시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군사적 의지를 내비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에도 북한 전투기 8대와 폭격기 4대가 남하해 특별감시선을 넘긴 했지만, 더 남쪽에 있는 전술조치선을 침범하기는 지난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엔 탈북자 단체가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띄우자 나흘 뒤 미그-29 전투기 4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개성 상공까지 비행했다.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
서부 내륙에선 비행금지구역 북방 5km(MDL 북방 25km), 동부 내륙에선 비행금지구역 북방 7km(MDL 북방 47km), 서해에선 NLL 북방 12km까지 접근했다가 북으로 다시 돌아갔다. 9ㆍ19 군사합의를 교묘히 비껴가는 도발을 감행한 셈이다.
그런데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쏜 포탄 중 다수가 9ㆍ19 군사합의에서 포사격을 금지한 ‘해상완충구역’에 떨어졌다. 다만, 영해에 떨어진 탄들은 없었다. 해상완충구역은 서해의 경우 덕적도 이북에서 북한의 초도(남포 인근) 이남까지 135㎞ 구간이고, 동해는 속초부터 북측 통천까지 80㎞ 범위다.
군 당국은 “명백한 9ㆍ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14일 아침에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위반 사실을 지적하고 합의 준수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대북전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포사격 하다가 평양서 SRBM도 쏴
북한의 속내는 다를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겉과 달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9ㆍ19 군사합의를 스스로 깨려고 하진 않는다”며 “합의 파기의 빌미를 주진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동ㆍ서해 포사격을 하는 사이인 14일 오전 1시 49분쯤 평양 순안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발도 동해상으로 쐈다. 한ㆍ미 군 당국은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약 700㎞, 고도는 약 50㎞, 최고 속도는 약 마하 6(음속의 6배)으로 탐지했다.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군사 도발을 장시간에 걸쳐서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양 위원은 “북한의 공격 패턴은 전형적인 대남 타격 방식에 따른 것”이라며 “다음 수순으로 기계화부대 대규모 이동, 공기부양정을 통한 대대적 상륙훈련, AN-2기를 이용한 특수부대 강하훈련 등 전시에 준하는 남침 훈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 MLRS 사격훈련 빌미 내세워
그러면서 13일 낮 한ㆍ미 군이 강원도 철원의 포병 사격장에서 실시한 다연장로켓포(MLRS) 사격훈련을 빌미로 내세웠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명의 발표에서 “13일 아군 제5군단 전방지역에서 남조선군은 무려 10여 시간에 걸쳐 포사격을 감행했다”며 “우리는 남조선 군부가 전선 지역에서 감행한 도발적 행동을 엄중시하면서 강력한 대응군행동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군은 오는 17~28일 연례 야외기동훈련인 호국훈련을 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훈련엔 미군 전력도 일부 참여할 예정이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이를 빌미로 새로운 도발을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 교수는 “핵무기를 완성한 국가들처럼 북한은 과거보다 훨씬 공격적”이라며 “미국의 항공모함이 들어와도 미사일을 쏘는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