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감사원이 배포한 20여 쪽의 보도자료엔 2020년 9월 이씨가 서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게 사살돼 소각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국방부와 통일부, 해경이 조직적으로 관련 사실을 은폐하거나 누락하고, 수십 건의 첩보를 삭제 또는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씨는 ‘자진월북’했다는 문재인 정부 발표와 달리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당시 처음에는 월북 의사를 언급하지 않거나 왜 북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다 북한군이 계속 캐묻자 뒤늦게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초동 대처부터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밝혔다. 이씨에 대한 최초 실종신고는 2020년 9월 21일 낮 12시51분쯤 해경에 접수됐다. 국방부는 다음 날인 22일 오후 5시18분쯤 안보실에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했다. 당시 북한은 코로나19 유입을 막으려고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을 이유불문 사살한다는 긴급 포고문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안보실은 주관부처인 통일부를 제외한 채 해경에만 상황을 전파했다. 이씨가 실종된 지 30여 시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에 근거가 되는 ‘최초상황평가회의’를 하지 않았다. 안보실은 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만 했고, 안보실장 등 청와대 주요 간부들은 오후 7시30분쯤 퇴근했다. 그리고 약 2시간 뒤 이씨는 북한군에게 사살돼 소각됐다.
초동 대처 과정에서 국방부와 통일부, 해경 모두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씨를 구조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 속에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검토하지 않았다. 통일부 역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해경은 이씨의 발견 정황을 보고받고도 “정보가 보안상황”이란 안보실의 지시에, 이씨의 발견 위치 등 수색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인근 해역만 살펴봤다.
미흡한 초동 대처보다 심각한 건 그 이후였다. 이씨가 사살됐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안보실을 포함한 정부 기관들은 자신의 대처 정황이 담긴 문건을 조작하거나 삭제했다. 안보실은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며 ‘보안 유지’를 강조했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국가안보 일일상황보고서’에 이씨의 피살·소각 사실을 누락했다.
감사원 “문 정부, 공무원 피격 확인뒤 바로 문건 조작·삭제”
국방부도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당시 서욱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실무자를 출근시켜 밈스(MIMS, 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관련 첩보보고서 60건을 삭제했다. 대북 전통문에는 피살 사실을 알고도 마치 이씨가 실종 상태인 것처럼 기재해 북한에 전달했다.
감사원은 정부가 이씨를 발견하고도 구조하지 못한 상황에서 안보실이 주도해 ‘월북몰이’가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국방부와 국정원 모두 최초 보고에선 “월북 가능성이 낮다”거나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보실은 23일 새벽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방부로부터 ‘자진월북’ 첩보를 보고받은 뒤 국방부와 해경에 ‘자진월북’을 기초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해경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감사원의 발표다. 해경 관계자들은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김홍희 전 해경청장이 김씨의 구명조끼에 한자가 적혀 있단 보고에도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고 발언했다고 진술했다.
해경은 표류예측 조사 과정에서도 더미실험과 수영실험, 표류예측 분석에서 월북과 다른 조사 내용들을 왜곡하고 제외시켰다.
감사원은 국방부가 이씨의 시신 소각 사실과 관련해서도 문 전 대통령의 “너무 단정적이었다”는 지시 뒤 “최종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입장을 변경해 대응하라”는 방침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시신이 소각됐음을 알면서도 불확실하단 언론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이날 감사 결과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자다가 봉창을 때린다. 저는 국정원을 개혁했지 문서를 파기하러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처음부터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사실관계를 비틀고 뒤집은 조작 감사”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