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재 지음
도서출판 집
미국 뉴욕의 플랫아이언(flatiron·다리미) 빌딩은 독특한 생김새로 유명하다. 도로와 도로가 비스듬히 맞닿은 좁고 긴 삼각형의 땅 모양 그대로 삼각기둥처럼 얇고 날카롭게 서 있다. 뉴욕의 관광객들도 곧잘 찾는 랜드마크다.
이만큼 높거나 유명하진 않아도, 실은 한국판 플랫아이언이 제법 된다. 도로에 잘려나간 듯 쐐기꼴 땅에 얇은 조각 케이크처럼 서 있는 건물도, 앞에서는 몰라도 옆에서 보면 엄청 좁은 땅에 식칼처럼 서 있는 건물도 있다. 대개 동네 가게 등이 들어서 있어 무심히 지나치기에 십상이지만, 누구라도 한 번쯤 궁금해진다. 과연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됐을까.
예컨대 서울 수색의 작은 쐐기꼴 땅과 건물들은 경의선이 지나는 이 지역을 일제가 중일전쟁 시기 물류거점으로 삼으며 철도관사촌 등을 지은 역사, 한국전쟁 이후 서울역 앞 피난민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등의 역사와 90년대 일산 신도시 건설과 함께 도로를 넓히며 기존 건물들이 잘려나간 얘기까지 이어진다. 저자의 탐사는 때론 백 년 안팎을 훌쩍 넘는 얘기로 이어진다. 성내동 주꾸미 골목에서는 백제 시절까지 거슬러가고, 숭례문 앞 얇은 빌딩에서는 조선 초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만든 연못 남지와 그 터의 변모를 드러낸다. 새문안로 작은 도장가게 건물에서는 600년 옛길과 세종문화회관 건설 때 확장된 50년 새 길이 맞물린다.
저자는 이 독특한 생김새의 건물들을 '얇은 집'이라 부른다. 곳곳에서 얇은 집의 내력을 추적하다 보면 종종 옛 물길과도 만난다. 서울 대학로 부근 흥덕동천과 반천, 서촌 부근 백운동천, 용산 부근 만초천과후암천, 정릉천 부근 월곡천 등은 복개공사로 사라지기 전의 자취를 지금의 도로들에 남겼다. 독립문 근처 영천시장 역시 만초천이 흐르던 자리란다.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땅 주인 의뢰로 설계했던 '얇디얇은 집'이 어렵사리 완공된 얘기가 나온다. 저자가 누가 봐도 번듯한 땅에만 관심 있는 건축가였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