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아닌 육지로 날아왔다…北 경고한다며 쏜 '현무' 추락

중앙일보

입력 2022.10.05 15:36

수정 2022.10.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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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5일 다시 동해로 돌아왔다. 한ㆍ미 연합 해상훈련과 한ㆍ미ㆍ일 대잠수함전 훈련을 마치고 떠난 지 5일 만이다.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지난달 29일 동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해군

 
전날 북한이 일본 열도를 넘겨 태평양으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는 등 전략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에 대응한 움직임이다.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IRBM은 미국의 전략기지인 괌(약 3500㎞) 사정권을 훌쩍 넘긴 약 4500㎞를 비행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쏜 미사일 중 가장 멀리 날아간 미사일이었다.
 
한ㆍ미 군 당국은 이처럼 북한이 강하게 도발하자 강공으로 맞섰다. 4일 오후 서해에서 F-15K 전투기로 공대지 유도폭탄을 투하하고, 이날 밤부터 동해로 지대지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정밀타격 능력을 보여주는 훈련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육군의 현무-2C 미사일(사거리 약 800㎞)이 발사 직후 추락하면서 화염이 치솟아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매우 놀라기도 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탄두는 민가에서 700m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는데도 군이 사고 이후 관련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해상 연합훈련 가질 듯"

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레이건함 등 미 해군 항모강습단은 동해 공해상을 향해 이동 중이다. 군 관계자는 “지난 5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합의했다”며 “추가 도발에 대비해 북한이 미사일을 쏜 당일 한ㆍ미 국방장관이 전화로 협의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6일엔 동해 공해상에서 한ㆍ미가 다시 연합훈련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미 항모강습단 전개가 급박하게 진행되다 보니 아직 훈련 내용이 확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에 참가한 함정들이 지난달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아래부터 위로,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함, 해군 구축함 문무대왕함,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사히함, 미 해군 순양함 첸슬러스빌함. 대열 제일 앞쪽은 미 해군 핵추진 잠수함 애나폴리스함. 사진 해군

군 일각에선 지난 대잠 훈련처럼 한ㆍ미ㆍ일 3국이 미사일경보훈련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사일경보훈련은 북한 탄도미사일을 가정한 가상의 표적 정보를 이지스 구축함들이 공유하면서 탐지ㆍ추적하는 훈련이다. 
 
한ㆍ미ㆍ일은 지난 8월 환태평양훈련(RIMPACㆍ림팩)을 계기로 이같은 훈련을 갖고 공개한 바 있다. 군 소식통은 "위성을 통한 데이터링크 체계로 정보를 공유하는 훈련"이라며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이 동해로 오지 않고도 훈련에 참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늦은 밤 사고, 이튿날 아침에 시인

한ㆍ미 군 당국은 4일 오후 11시부터 강원도 동해안의 공군기지에서 지대지미사일 사격도 했다. 먼저 육군의 현무 2-C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발사 직후 비정상적인 비행을 하다가 기지 내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관계자는 "발사 직후 미사일이 앞(해상)이 아닌 뒤(육지)로 날아오면서 기지 내 골프장에 비정상적으로 떨어졌다"며 "탄두는 민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4일 밤 육군이 발사한 현무-2C 지대지미사일이 비정상적으로 비행 후 강릉 공군기지 내에 떨어졌다. 밤사이 불길과 함께 큰 폭발음이 여러 차례 들려 인근 지역 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냐'며 불안한 밤을 보냈다. 연합뉴스

 
화염이 올라오자 인근 주민들이 신고하고 촬영한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낙탄 사고였지만, 군 당국은 이튿날 아침까지 사고와 관련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합참은 5일 오전 7시쯤 한ㆍ미 양국 군이 전술 지대지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를 2발씩 총 4발을 발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현무-2C 발사 실패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러면서 이후 기자들에게 사고 사실을 따로 알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군 관계자는 “(주민들이 본 화염은) 탄두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떨어진 추진체가 연소하면서 보인 불꽃”이라며 “발사 직후 기지 내로 떨어져서 인명 사고 등 민간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들이 많이 놀라셨을 것”이라며 뒤늦게 사과했다.
 
에이태큼스 발사는 현무-2C 추락 뒤 2시간 여 뒤인 5일 새벽 0시 50분쯤 이뤄졌다. 군 소식통은 "서로 떨어진 위치에 이동식 발사대(TEL)가 배치돼 있어 사고를 수습하고난 뒤 안전점검을 거쳐 에이태큼스 실사격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5년 전에도 현무-2 발사 실패

현무-2 미사일 발사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7년 9월 15일에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한다며 쏜 현무-2A 미사일(사거리 300㎞) 2발 중 1발이 발사 직후 동해상에 떨어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군 소식통은 “발사하자마자 지그재그로 회오리치듯 올라가던 미사일이 곧바로 추락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에 대해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군 핵심 무기는 실전 상황에서 어떻게든 정상 작동해야 한다”며 “아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왜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 군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대응해 발사한 현무-2C 미사일 1발이 추락하는 사고가 4일 발생한 가운데 이튿날 탄이 떨어진 강원도 강릉의 부대에서 폭발물이 적힌 팻말이 붙은 차량이 나오고 있다. 뉴스1

현무-2 미사일의 실사격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인 만큼 군 안팎에선 미사일 자체의 결함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현무-2C의 경우 실전 배치 이후 실사격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재고탄 부실 관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지난 5년 동안 재고탄 관리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지난 5년간 연합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남북 대화에만 올인하더니 결국 남은 건 불발탄이란 자조까지 나온다”고 군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합참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측과 원인을 정밀 조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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