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박물관 외교

중앙일보

입력 2022.09.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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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인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모든 국가의 산업품을 전시한다는 취지로 야심 차게 개최한 행사는 600만 명 넘게 관람했다. 당시 영국 인구 3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영국은 박람회에 출품된 뛰어난 공예품과 디자인 작품을 전시해 대중을 교육하고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겠다는 취지로 1852년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을 설립한다.

 
영국박물관과 함께 런던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히는 V&A에서 지난 24일 ‘한류(HALLYU! THE KOREAN WAVE)’ 특별전이 개막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가 수십 년 사이에 음악·영화·드라마·패션과 뷰티 등을 전 세계에 전파하게 된 다이내믹한 성장사를 보여주는 자리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 문화에 대한 즐겁고 현란한 기념”이라 평하며 별점 5점 만점을 줬다. 1970년대 압구정 아파트를 배경으로 농부가 소 끌고 밭 갈던 풍경부터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K팝 스타의 의상과 응원봉, 드라마 ‘오징어 게임’ 코스튬,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변기 세트장 등이 나왔다. 한류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부문에서 약진해왔음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이번 전시 역시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니다. 1888년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조선 유물을 둘러보고 “구비된 것이 일본박물관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감을 『미행일기(美行日記)』(푸른역사)에 남겼다. 그런 상황은 100년 넘게 이어졌다. 한국 정부가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외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치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다(『한국외교 60년』).

 
1992년 V&A에 40여평 규모의 삼성관(한국실)이 설치됐다. 2012년엔 삼성전자UK의 후원으로 첫 정규직 한국관 큐레이터 자리가 생겼다. 당시 채용된 로잘리 킴(한국명 김현경)이 이번 한류 전시 기획자다. 그럼에도 중국·일본실에 비해 초라하다는 평이 많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사업의 하나로 V&A에 2021년부터 5년간 20억원 예산을 편성했다. 일부는 이번 전시에 투입됐다. 박물관 한국실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자랑하고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공간이다. 이렇게 쓰이는 세금은 아깝지 않다.

한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사진=연합뉴스

한류 전시에 출품된 작품. 사진 V&A

한류 전시관 모습. 오징어게임 코스튬과 한복, 책가도 병풍 등이 보인다. 사진 V&A

V&A 한류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

한류 전시에 나온 미인도 병풍. 사진 V&A

기생충의 반지하 세트 전시물을 관람하는 관객. Photo by Vianney Le Caer/Invision/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