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미국 사업 확장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979만원)의 세액공제가 부여되는데,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보조금 지급에 따른 시장 확대와 중국 경쟁사 견제로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이후 북미에서만 200GWh(기가와트시) 이상 대규모 배터리 생산 능력을 구축할 계획이다. SK온과 삼성SDI도 각각 포드·스텔란티스와 합작 회사를 세우며 미국 내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를 제외하고 미국에 생산 시설을 갖춘 업체는 일본 파나소닉이 유일하지만 생산능력은 40GWh에 불과하다.
다만 중국 배터리 업체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에 배터리 생산 시설 부지를 알아보고 있어 한국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할지는 미지수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CATL과 비야디(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미국 생산 기지를 계획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승인할지가 관건이라 한국 업체에 무작정 유리하다고도 볼 수 없다”고 전했다.
미국 내 생산·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를 준다는 또 다른 조건은 현대차와 기아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는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 EV6를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를 연간 30만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가동할 예정인데, 법안이 내년부터 시행된다면 2년 동안 보조금 없이 팔아야 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을 앞당기지 않으면 시장을 놓칠 수 있어 결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도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단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위배 소지가 있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 판단이다. 한·미 FTA에 의하면 미국이 수입하는 품목과 미국에서 제조한 국산품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내국민대우’ 규정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에서 제조·수출하는 완성차가 불이익을 받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 측에 FTA에 따른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피해 우려가 있는 만큼 통상 채널을 통해 미국에 FTA 위배 소지 등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