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에 비유하자면 갑자기 어린이보호구역이나 터널 같은 급감속 구간을 만난 것 같다. 그만큼 최근 들어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속도를 줄이는 게 심상치 않다. 대외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지는 않겠지만 내부 분위기가 ‘긴장 모드’로 바뀐 것은 맞다.”
6일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중앙일보에 전한 말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 내부에서 ‘잿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공급망 대란과 고금리, 물가상승 등이 겹쳐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수요 감소 및 납품 연기, 재고 급증, 설비 반입 연기 등이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마이크론도 “설비 투자 줄일 것”
이날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 대비 최고 10%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초 가격 하락률을 3~8%로 예상했지만 낙폭 예상치가 더 커졌다. 트렌드포스 측은 “일부 D램 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 인하 의사를 보이고 있다”며 업체 간 경쟁이 일어나면 가격이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분야별 예상 하락률은 PC용·서버용은 5~10%, 모바일용은 8~13%, 그래픽용 3~8% 등이다.
스마트폰 등 수요 감소로 가격 급감 전망
가격 인하 요인으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세계적 인플레이션 현상 등에 따른 TV·스마트폰·PC 등의 수요 감소가 꼽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애플·중국업체 등 모바일 수요가 급감한 데다 PC 역시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면서 수요가 줄었다”며 “서버 부문에서도 인텔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가 늦어지면서 하반기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전망도 업계 체감도와 비슷하다. 가트너는 최근 PC·태블릿·휴대폰의 글로벌 출하량이 지난해 20억6500만 대에서 올해 19억700만 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품별로는 PC가 3억4200만 대에서 3억1000만 대, 태블릿이 1억5600만 대에서 1억4200만 대, 휴대폰이 15억6700만 대에서 14억5600만 대로 감소할 전망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을 전년보다 3% 줄어든 13억5700만 대로 예상했다. 지난 5월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9600만 대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 1억 대 미만을 기록했다.
“실적 시장 하회 예상, 극단적 상황은 No”
전문가들은 메모리 업계 침체는 예상하지만 극단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의 경기 둔화,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우려로 당연히 저가 제품 위주의 수요 침체가 있지만 이미 시장에 알려진 사실이라 수요가 20~30% 급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업체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하지만 하반기 아이폰14 등 프리미엄 제품 출시도 예정돼 있어 빙하기로 들어가는 극단적 상황이 닥칠 가능성은 작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