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역지사지(歷知思志)] 이예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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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문화팀 기자

1416년 1월 태종은 왜구에 잡혀 유구(오키나와)에 팔려간 조선인이 많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토록 했다. 호조판서 황희는 반대했다. 유구까지 거리가 멀고 뱃길이 험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양에서 유구까지는 직선거리로 1267㎞. 대한해협 등 비교적 가까운 바다만 건너면 되는 대마도나 규슈와는 달리 먼 바다를 항해해야 했다. 하지만 태종은 쇄환사를 보내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귀한 가문의 가족이 그곳으로 끌려갔다면 번거로움과 비용을 생각지 않고 사람을 보내 데려오려고 하지 않겠느냐.”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때 유구로 파견된 이예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었다. 울산의 중인 출신인 그는 8세 때 왜구에 의해 어머니가 납치됐다. 1400년 그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사신을 따라 대마도로 가서 집집이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태종의 눈에 띈 그는 이후 40여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40여 차례 조선-일본을 오가며 조선인 667명을 쇄환했다. 이때도 험한 뱃길을 뚫고 유구까지 가서 포로 44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저들의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으리라.
 
2년 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월북 시도’라던 결론이 최근 뒤집혔다. 당시 청와대가 첫 보고를 받았을 때는 A씨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을 구해야 할 정부는 어떤 ‘번거로움’과 ‘비용’을 생각했던 것일까. 유족의 정보 공개 요구에 “아무것도 아닌 일” “북한에 사과받았으니 마무리된 것”이라는 대응에 당혹스러운 국민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