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급락에 투자자들이 긴장하는 건,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시장 때문이다. 디파이 프로토콜에 암호화폐를 맡기면 이자를 받을 수 있고, 예치한 코인을 담보로 코인을 빌릴 수도 있다. 은행의 예금담보대출과 비슷하다. 이 디파이 시장 대출의 주요 담보물이 이더리움이다.
특히 지난해 상승장에서 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대체 암호화폐) 값이 급등하자 디파이 시장 예치금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해 말 전 세계 디파이 시장 예치금은 2600억 달러(약 310조원)로 전년보다 12배 늘었다”고 밝혔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종잣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신용을 창출하는 이른바 ‘풍차 돌리기’가 성행한다”며 “암호화폐나 디파이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자도 유튜브 채널 등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묻지마 투자’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하락장이 찾아왔을 때다. 디파이 프로토콜은 담보물의 가치가 하락해 대출 원금에 가까워지면 담보물을 강제 청산해 손실을 피한다. 최근 이더리움 가격 하락 폭이 시장 예상보다 큰 배경에는 디파이 시장의 강제 청산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디파이 프로토콜의 대량 매도 주문으로 이더리움 가격이 더 내렸고, 그 결과 청산 대상 담보물이 늘어나고 가격은 더 추락하는 악순환이 왔다는 것이다.
정보제공업체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디파이 시장의 담보물 가치(TVL)는 지난 4월 초 800억 달러(102조원)에서 13일 430억 달러로 반 토막 났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블록체인 금융 생태계에는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있는 규제나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루나 사태 때와는 달리 이더리움 폭락이 ‘죽음의 소용돌이’까지 이르진 않을 거란 시각도 있다. 이더리움이 암호화폐 중 시가총액이 두 번째로 크고 기술과 생태계가 견고해, 저가 매수 수요가 클 것으로 봐서다. 디지털자산운용사 비브릭의 권용진 전략이사는 “루나·테라와 달리 이더리움 발 디파이 연쇄 청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한편 제2의 루나·테라 사태를 막기 위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암호화폐 거래소가 공동협의체를 꾸려 암호화폐 상장-유통-폐지 단계에서 공통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또 투자자에 위험 종목을 알리고 프로그램 자동매매를 차단하는 ‘가상자산 경보제’를 도입하고, 비상사태시 24시간 이내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