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지음
나남출판
그는 소위 ‘회고록주의자’다. 장관ㆍ총리 등 공인으로서 나라를 이끈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회고록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회고록은 일종의 ‘백서’(白書)다. 공인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해, 후임자ㆍ후세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자화자찬으로만 가득 찬 수많은 회고록은 그가 말한 회고록이 아니다. 아쉬움ㆍ실수ㆍ후회ㆍ반성 등도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적혀야 한다. 대형 사건·사고가 난 뒤에는 반드시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백서가 따라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회고록을 쓰는 주체가 살아있는 자신이다 보니 차마 ‘백서’를 쓰지 못한다.
그의 회고록이 백서라면, 미ㆍ중 패권경쟁과 기정학(技政學)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지금에 교훈 삼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그는 지론은 과학기술이 정치ㆍ경제에 앞선 상위개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관 시절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출연한 한국과학기자클럽 간담회는 그의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 연설문 초고를 직접 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은 군사력이었으나 이제는 기술력으로 바뀌었습니다. … 이제부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주도하여야만 산업과 사회의 발전과 평화가 가능한 새 시대, 새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과학기술 언론인 모임에 대통령이 나타난 경우는 없었다.
취재기자로서 그의 주 경력은 경제부처 출입이었지만, 당시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발족 등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KIST 초대 소장을 맡았던 최형섭 과기처 장관(2대)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창립멤버였던 활동했던 한국미래학회가 과학기술처의 용역을 받아 만든 ‘서기 2000년 프로젝트’도 경제 기자로서 그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 전 장관은 "지금은 30년 전보다 과학기술이 더 중요한 기정학의 시대가 됐다”며 “부처를 넘어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과학기술 정책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