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퇴임식 없이 떠난 검찰수장, 마지막 말은 "경찰개혁"

중앙일보

입력 2022.05.16 15:50

수정 2022.05.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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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사표가 수리된 지난 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사직 인사를 올렸던 것으로 16일 뒤늦게 확인됐다.

 
김 전 총장은 사직 인사를 통해 “지난해 6월 1일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이후 70년만의 새로운 형사사법제도를 안착시키고자 여러분과 함께 국민중심 TF를 구성하여 조직 재정립, 수사관행 혁신,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며 “특히 국민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형사·공판부와 수사·조사과를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로비에서 직원들에게 인사말을 마친 뒤 청사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반발하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김 전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연합뉴스

다만,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과 관련해선 “사건처리 지연, 국가 범죄 대응능력 사장 등 돈과 힘을 가진 범죄자에게만 유리하고, 힘없고 억울한 피해자는 구제받기 어려운 상황이 오고 있다”며 지난달 7일 이후 총장으로서 기울여 온 ‘검수완박’ 저지 노력을 일자별로 상세히 남겼다.

 
김 전 총장은 지난달 11일 첫 번째 사표 제출에 관해 “지난달 9~10일 깊은 고민 끝에 ‘검수완박’ 법안 추진 결과에 관계없이 직을 걸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굳혔고,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다만, 사직서 수리 전까지 총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검사장 회의 주재, 언론을 통한 국민 호소, 대통령 면담 요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국회부의장 및 국회의장 면담 등 일정을 순차적으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총장은 “지난달 18일 청와대로부터 면담 연락이 왔는데, 저는 법안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대통령님을 뵙고 70분 동안 법안의 문제점을 말씀드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에 대한 설득 노력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실제 김 전 총장은 문 전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국회를 찾아 박광온 국회 법사위원장(지난달 19일), 박병석 국회의장(지난달 21일) 등을 잇달아 만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김오수 전 검찰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지난 6일 올린 사직 인사에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에 대한 설득 노력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썼다. 사진 청와대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지난달 22일 국회의장 중재안에 대한 보도가 나왔고, 점심시간에 여야 정치권에서 중재안을 수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너무 놀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제가 할 일이 없다는 생각뿐이었고, 대검 간부들도 동의해줘 즉시 법무부 장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부연했다.

 
부패·경제범죄와 경찰 송치사건를 제외한 검사의 모든 수사권을 박탈한 ‘검수완박’ 법안은 지난달 30일(검찰청법)과 지난 3일(형사소송법) 국회를 통과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문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공포됐다. 법안 부칙에 따라 4개월의 유예기간 뒤인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총장은 “다수의 힘으로 민주적 절차를 어기고, 날짜를 정해놓고 밀어붙이자 우리의 대응은 역부족이었다”면서도 “우리가 내는 목소리의 진정성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진심으로 호응해 주시는 것에서 용기를 얻었으며, 한 줄기 희망을 볼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6월 7일 오후 김창룡 경찰청장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총장은 ‘검수완박’ 이후에 대해선 “이제 검찰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 성급하게 입법된 현 제도를 헌법정신에 맞게 보완하고, 국민들께서 형사사법절차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경찰개혁’을 강조했다. “검찰의 수사기능 제한으로 수사권을 독점하게 된 경찰에 대한 견제와 균형 장치는 필수적”이라면서다. 김 전 총장은 “2020년 형사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추진하기로 했던 자치경찰제 강화,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 등 이행은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며 “향후 전례 없는 길을 가야 하지만, 그 험난한 과정에서 헌법이 부여해주신 책무를 철저히 이행하고, 여러분 스스로 검찰의 존재 의미와 필요성을 국민들께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이 어려웠던 시기를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사직 인사를 맺었다.

 
앞서 김 전 총장은 지난 6일 별도의 퇴임식 없이 대검 1층 현관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떠나게 돼 국민과 검찰 구성원 여러분께 죄송하다. 검찰이 어렵지만, 저력이 있으니 이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해내리라 믿는다”는 인사를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지난해 6월 1일 취임한 지 340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 전 총장이 올린 사직 인사에는 아직까지 댓글 등 별다른 반응은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