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의 키를 쥐게 된 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밝힌 정책 방향은 이렇게 요약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가계부채, 경기 둔화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그의 고민이 묻어났다. 이 후보자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이 앞으로 1~2년은 계속될 것”이라며 “지금은 인기가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 신호를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속도 조절 가능성은 열어뒀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오는) 5월과 7월 금리 결정에서는 데이터를 보고 성장과 물가 양자를 균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날 기재위는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표결 없이 채택했다.
중앙은행의 수장으로 그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는 물가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4.1% 상승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3개월 만에 최대로 올랐다.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은 2.9%로 2014년 4월(2.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면 임금 인상 등을 통해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2차 효과가 발생한다.
해외 상황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미국 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8.5%)이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8.3% 뛰며 ‘인플레 수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옮겨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2월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커지는 물가 상승 압력을 누르기 위해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물가를 잡겠다고 무작정 금리를 올릴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 속 급증한 가계 빚(1862조원)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은 1756조원, 자영업자 대출은 909조2000억원에 이른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3조원,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6조4000억원 증가한다. 이 후보자는 “더 이상 부채가 늘어나는 건 국민 경제 전체에 좋지 않다”며 “영끌족이라든지 돈을 많이 빌려 쓴 갭투자자들에게 당장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금리 인상) 신호를 줘 가계부채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변수는 가계 빚 … 이창용 “범정부 TF 필요”
식고 있는 성장동력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2030년 1.9%, 2030~2060년 0.8%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낸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기준금리를 더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이 후보자는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구조로 가지 않게 막아야 하는 구조적 노력을 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의 통화정책 퍼즐 맞추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긴축에 가속을 내는 미국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중국 등의 상황도 계산에 넣어야 해서다. 인플레 압력에 시달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5·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
이 후보자는 “금리 역전 시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 같지만, 원화 가치가 절하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올 수 있다”며 “(금리) 격차를 너무 크지 않게 하면서도 경제 상황을 보면서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하는 미세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만의 통화정책 속도’를 강조한 건 이유가 있다. 이 후보자는 “한국 경제는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갑자기 충격이 와서 경기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