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까지는 국회의 시간이자 입법의 시간”이라며 “현재로선 국회 논의를 지켜본다는 것 외에 별도의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공포되려면 국무회의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국회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무회의 상정 시점이 온다면 문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민주당이 당론에 따라 4월 임시국회 내에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더라도, 문 대통령에게는 해당 법률안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검찰과 야당은 이를 근거로 문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날 오전 “법안에 대한 공포와 재의결 요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 등 모든 절차와 방안을 강구해 호소하고 요청하겠다”며 직접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뜻을 밝힌데 이어, 오후엔 별도 간담회를 통해 “이날 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하는 것이야말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마지막 소임”이라며 “민주당이 무리하게 검수완박법을 처리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어 “임기를 한 달도 안 남긴 채 또 다시 검찰개혁을 꺼내든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서 저지른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 의심된다”고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과 상시 청문회를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두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된다.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172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66건의 법안 중엔 재의결을 통해 통과된 사례가 없다.
만약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뒤, 민주당이 이에 반발해 국회 재의결로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거부한 첫 사례가 된다. 문 대통령의 거부권 자체는 물론, 거부권 행사 이후 발생할 민주당의 회군 또는 독자노선 선언 등 모든 경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여권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민주당이 강행처리해 통과시킨 법안을 그대로 국무회의에서 공포할 경우 문 대통령은 침묵을 통해 여당의 강행처리에 동조했다는 평가를 받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문 대통령은 임기말 극심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는 부담을 안고 정권을 윤석열 당선인에게 넘겨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