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빌드업…벤투호 숙제는 ‘플랜B 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2022.03.31 00:03

수정 2022.03.3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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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열린 UAE와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 장면. 한국은 볼 점유율 77%, 16차례 코너킥 기회에서 득점하지 못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 축구가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UAE)에 일격을 당했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이 신봉하는 ‘빌드업(build-up·패스워크 위주로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경기 방식 )’ 축구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승부였다. 오는 11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빈 ‘황소’ 황희찬(26·울버햄프턴)의 기량을 확인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29위 한국은 29일 밤 UAE 두바이의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UAE(69위)와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에서 후반 8분 상대 공격수 하립 압달라에 골을 내준 끝에 0-1로 졌다. 마지막 경기에서 첫 패배를 당한 한국은 7승2무1패(승점 23점)로 최종예선을 마쳤다. 같은 날 레바논을 2-0으로 꺾은 이란(승점 25점·8승1무1패)에 A조 선두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나흘 전 ‘숙적’ 이란을 2-0으로 완파하며 11년 간 이어진 맞대결 무승(7경기 3무4패)의 늪에서 벗어났지만, UAE전 패배로 빛이 바랬다.
 

황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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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UAE와 축구 A매치에서 진 건 2006년 1월 이후 16년 만이다. UAE를 상대로 최근 6연승 행진도 마감했다.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데다, 본선 조 추첨을 앞두고 포트3(본선 참가국 중 16~23위) 진입도 완료해 긴장감과 목표 의식이 함께 떨어진 게 독이 됐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은 벤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의 느슨한 마음가짐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그는 “한국은 UAE만큼의 야망과 열정을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모두가 (패배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력과 태도까지도 실망스러웠다”고 꼬집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팀 성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에이스 손흥민(30·토트넘)을 포함, 한국 선수들의 발걸음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가운데 UAE전에서 그나마 제 기량을 발휘한 건 공격수 황희찬이었다. 풀타임을 소화하며 저돌적인 돌파와 과감한 슈팅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전반 43분 상대 페널티 아크 외곽에서 오른발로 감아찬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하는 등 위협적인 장면도 여러 차례 연출해냈다. 상대 거친 태클의 표적으로 자주 그라운드에 나뒹굴었지만,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볼을 공격 지역으로 운반했다.
 
황희찬은 “(UAE전 패배는) 우리 선수들이 원하던 결과는 아니지만, 한 경기를 진 걸로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큰 틀이 무너지진 않는다”면서 “2차예선부터 최종예선까지 모든 일정을 단 1패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UAE전 경기 기록

UAE가 시도한 전방 압박에 고전한 건 본선 도전을 앞둔 우리 대표팀에 적신호다. 볼 점유율 77%에 무려 16차례의 코너킥 기회를 얻고도 한 골도 넣지 못한 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상대팀 축구 스타일에 민감하게 반응해 번번이 ‘맞춤 전술’을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경기 흐름이 뜻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빌드업 위주의 플랜A가 통하지 않을 때, 손흥민이 상대 집중 견제에 묶일 때, 믿었던 수비진이 흔들릴 때 흐름을 바꿀 해법이 필요하다.
 
벤투 감독은 다음 달 2일 본선 조 추첨식을 앞두고 카타르 도하로 건너갔다. 조 추첨 현장에서 한국과 한 조에 묶일 상대 팀의 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대회 기간 한국대표팀이 머물 베이스캠프도 둘러볼 예정이다.
 

카타르월드컵 대륙별 본선 진출국

오는 6월과 9월에 치를 A매치 평가전의 과제는 본선 경쟁력 제고다. UAE전처럼 경기가 안 풀릴 때, 또는 불의의 일격을 당해 먼저 실점했을 때 미리 준비한 플랜 B를 변속 기어로 삼아 전체적인 흐름을 바꿔야 한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 본선에선 한 차원 높은 압박 능력과 골 결정력을 지닌 나라들과 만난다”면서 “남은 기간 빌드업 축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전술적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경기 상황과 상대의 특징에 맞춰 대처 가능한 팀을 만드는 건 우리의 장점을 버리는 게 아니라 장점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