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듣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일리(1ㆍ2)있는 논쟁’을 22일부터 연재 중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찬반 의견에 이어 오늘(24일)부터는 탈원전ㆍ태양광 발전 이슈를 다룹니다.
오늘 글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3학년 곽승민 학생이 썼습니다. 내일은 전남 신안군에서 태양광 설비와 관련한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강상용 변호사의 칼럼이, 모레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의 칼럼이 게재됩니다. 더 다양한 글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글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3학년 곽승민 학생이 썼습니다. 내일은 전남 신안군에서 태양광 설비와 관련한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강상용 변호사의 칼럼이, 모레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의 칼럼이 게재됩니다. 더 다양한 글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찾은 정보는 영화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국내 원자력 발전소의 격납 용기는 27톤 비행기가 시속 800km로 충돌해도 외벽만 살짝 손상될 정도로 튼튼한 데다 내진 설계 역시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원전 위험성에 놀라서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구상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2017년 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은 급발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지만 원자력은 사람 머릿속에서 캐내는 에너지다.” 미국 정부 과학 고문이었던 워커 시슬러(1897~1994) 박사가 1958년 이승만 대통령에게 했다는 조언입니다. 단순히 원자력과 다른 에너지원의 차이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시사하는 것이 많은 말입니다. 에너지 자원도 없고 수급도 어려운 악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몇 년 후인 1958년에 원자력법을 빠르게 제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미래를 준비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물리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트렌디한 분야보다는 국가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학문을 하고 싶었기에 주변의 우려를 접고 전공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비록 지금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고 있지만 오래 못 간다'는 확고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지진 나면 원전으로 달려!"
실제로 원자력 발전소 내부 시설을 견학을 갔을 때 격납 용기의 두께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과 동기들끼리 "지진이 나면 제일 먼저 원자력 발전소로 달려가야 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 와중에 신기한 일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입학 2~3년 후 세부 전공 선택을 봤더니 원자력을 전공하겠다는 친구들이 늘어난 겁니다. 원자핵공학과는 크게 원자력·핵융합·산업 플라스마·방사선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입학 초반엔 다른 전공을 고려하던 친구들 가운데 결국 원자력 분야를 선택한 경우가 꽤 됐습니다. 초기엔 탈원전 정책 탓에 다른 전공을 택했지만 공부할수록 원자력의 안전성과 우수성에 대해 알게 되고, 또 탄소 중립을 위한 원자력 부활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서 원자력을 택한 게 아닐까요.
원자력이라는 학문의 매력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2018~19년 겨울 저는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비과학적인 정책 결정 방식이 너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잘못된 정책이고, 우리나라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안인 만큼 굳은 결심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거리에 나갔지만 마음 한켠에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과연 몇 명이나 서명해줄까, 아니 서명을 받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욕먹을 때도 잦았지만 열에 두셋은 "몰라서 묻는데 정말 안전하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설명하면 "덕분에 원전이 안전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맙다"라고 인사를 하고요. 이 과정을 통해 실험실 안에서의 연구뿐 아니라 소통의 중요성을 체감했습니다. 서명이 20만을 넘기면서 더더욱 힘이 났습니다.
강남에 원전? 와이 낫?
서울 사람들이 쌀 많이 먹는다고 서울을 논밭으로 채워야 하나요? 공간이 비좁기도 하지만 땅값이 비싸서 서울은 부지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강남에 원전을 안 짓는 건 안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간 제약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서울 인근이라도 SMR 건설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 모듈형 원전(Micro Modular Reactor)은 공간 제약이 기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도심에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서울 강남에 짓는다 해도 어느 누구도 안전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 또한 전공자의 의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공부하는 서울대 캠퍼스에, 아니면 제가 사는 강남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런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