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싸우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이날 연설 장면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모든 장비와 역량을 동원하는 국가 총동원령을 선포한 뒤 공개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얘기한 대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크라이나를 도울 군사적 개입에는 선을 긋고 있다. 당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이유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거론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미국 주도의 NATO에 가입하면 자신들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미국·나토, 참전엔 선긋기
대신 미국과 NATO는 독일ㆍ폴란드 등 NATO 회원국을 중심으로 전력을 증강하며 일종의 ‘방화벽’을 쳤다. 우크라이나가 위기를 맞았는데 미국과 서유럽은 우크라이나 바깥에서 ‘넘어오지 말라’며 병력을 추가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침공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침공 첫날인 24일 “우크라이나군 시설 83곳을 무력화했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새벽 침공을 선언하며 “우크라이나 점령 의사는 없다”고 해 일각에선 국지전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왔지만 전혀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남ㆍ북ㆍ서쪽 방면에서 동시에 진격하며 거점을 장악하자 군사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몰린 우크라이나는 속수무책이다. 러시아군은 개전 9시간 만에 수도 키예프 턱밑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5일 “러시아 병력이 거의 모든 방향에서 진격을 저지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의 공격은 계속됐다. 외신들이 전하는 현지의 영상에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장면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개전 이전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소총을 들고 “우리 땅은 우리가 지킨다”며 결사항전의지를 불태웠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경비대의 저항이 없었다고 알리고 있다.
인계철선 존재 땐 침공 쉽지 않아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상호방위조약 등 미군의 자동 참전 장치가 없다. 우크라이나는 또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해 NATO에 가입하기 전이어서 NATO군 역시 나서기 어렵다. 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장은 “나토와 EU에 가입하려면 법치, 인권, 언론 자유 등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하는 데 91년 소련 해체 후 이제 막 탈공산화한 동유럽 국가는 신생 국가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가입 조건에 미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가장 먼저 탈공산화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에 가입하는 데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친러와 친서방으로 정권 교체가 이어지면서 사회 혼란이 극심했다는 것이다. 이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과 돈바스 내전으로 나토 가입 요건(내전국 배제)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미군이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도울 결심이 있다면 6ㆍ25전쟁 때처럼 유엔군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전쟁에 나선 만큼 안보리 차원에서 논의조차 쉽지 않다. 즉 우크라이나 스스로 러시아에 맞서거나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전봉근 국립외교연구원 교수는 “미국은 자국 영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거나 동맹국에 인계철선을 설치한다”며 “특히 강대국끼리 부딪치면 핵전쟁으로 간다는 걸 알고 있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인계철선을 제공하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