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명묵이 고발한다

민주당 의원님들, 청년 눈엔 中 안 싫어하는 게 더 이상합니다 [임명묵이 고발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2.02.08 00:01

수정 2022.02.0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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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을 찾은 황희 문체부 장관(왼쪽)과 박병석 국회의장. 배경은 개막식 모습.

본래 올림픽·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는 언제나 민족주의 정념이 분출되는 이벤트지만,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특히 심하다. 7일 밤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에서 황대헌, 이준서 두 선수가 수긍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실격하면서 반중 감정이 몹시 악화됐다. 
사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개막식(4일)부터 논란이었다. 56개 중국 소수 민족 대표가 각자의 전통의상에 오성홍기를 들고 나왔는데, 한복 입은 댕기 머리 소녀가 포함된 탓이다. ‘한국에 대한 문화 침탈’이라는 반응이 끓어올랐다. 앞서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는 "중국의 홈 텃세"를 말한 게 빌미가 돼 갖은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악플 테러에 시달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방점은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베이징’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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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이 싫으냐" 묻는 386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준준결승전에서 중국 선수에 앞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납득할 수 없는 판정에 의해 실격 처리된 황대헌 선수(맨 앞). [뉴시스]

다시 불거지는 한중 네티즌 갈등을 보니, 평소에 386세대를 비롯한 어르신(?)들에게 받곤 하는 “요즘 애들은 중국을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는 질문이 생각난다. 재밌는 건, 내 또래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정반대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 집권한 ‘그 세대’는 왜 이렇게 중국을 좋아하는 거야?” 양쪽에서 이런 질문을 받다 보니 중국을 둘러싼 세대 간의 극명한 인식 격차가 피부로 다가온다.

기성세대는 “우리라고 중국을 좋아하진 않지만, 실용적으로 중국 입장에 맞춰주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현재 청년층의 반중 정서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에 할 말을 하는 걸 원한다. 기성세대가 당혹스러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렇게까지 싫어한다고?”

하지만 청년 층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중국을 싫어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영화나 무협지 같은 홍콩 문화, 혹은 『삼국지』로 대표되는 중국 고전 등의 영향력이 한국에서 빠르게 퇴조할 무렵 태어나 성장했다. 중국을 처음 접한 통로는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한 ‘대륙의 기상’이라는 밈(meme)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은 고도성장기 중국이 겪는 아노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게 문제였다. 
중국이 고도성장기의 혼란을 딛고 빠르게 현대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악화했다. 여기에는 시진핑 정부 들어 두드러진 중국 당국의 고압적 자세, 그리고 서방과 날을 세우는 대결 구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중국은 한국의 문화 영역을 침범하는 국가다. 한류가 중국에 확산하면서, 역설적으로 중국은 관(官)과 민(民) 할 것 없이 한국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됐다. 중국 네티즌들이 김치와 한복 등 한국 전통을 자기네들 것이라 우기며 불거진 갈등, 부정행위를 위한 핵(hack)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중국 게임 유저들과의 만남, '하나의 중국' 탓에 벌어지는 대만 등과의 불편한 관계 등등 종류는 다양하다. 
 

문화전쟁 전선에서 싸우는 MZ 

K팝 아이돌로만 시선을 좁혀도 그렇다. BTS가 한미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20년 밴 플리트 상을 받았을 때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수상 소감으로 중국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에 맞선 중공군을 모욕했다"는 이유였다. 그 해 ‘중국의 상징’ 판다를 맨손으로 만졌다는 이유로 블랙핑크 역시 공격받았다. 2021년 걸그룹 마마무 소속사인 RBW의 SNS에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게시글이 갑작스럽게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이 있었다. RBW와 마마무는 한국과 중국 양국 네티즌의 공격을 모두 받으며 앨범 초동 판매량이 직전보다 절반으로 뚝 꺾였다. 


또 한국 K팝 팬덤 사이에서는 중국 활동을 위해 계약이 끝나기 전에 그룹(엑소)을 탈퇴한 중국인 멤버 크리스를 비롯해 중국 활동에만 집중하는 중국인 멤버를 ‘중국 둘기(비둘기)’라 부르며 중국 출신의 데뷔 자체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사실 이런 갈등은 이미 2015년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쯔위가 대만 국기(청천백일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들의 엄청난 공격을 받은 끝에 마침내 쯔위가 공개 사과를 했을 때 이미 예고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5149건의 민원이 심의대기 중인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진 SBS]

지난해 한국 네티즌들이 드라마 '조선 구마사'를 ‘친중 드라마’라며 방영 초기에 폐지하게 만든 놀라운 사건의 배경에는, 이런 사건과 마주하며 누적되어 온 중국에 대한 경계심, 위기감, 반감이 있었다. 이미 ‘문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온라인 문화 전선’을 인지하지 못하면 청년 층의 반중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 전선에서 매일 중국과 싸우는 청년층 눈에는 오히려 "저 명백한 위협이 대체 왜 보이지 않냐"고 타박할 수밖에 없다.  
 

젠더 갈등보다 더 큰 반중 정서  

4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의 중국 국기 입장에서 한 여성(앞줄 왼쪽 둘째)이 한복을 입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갈등의 소재가 문화 정체성이니만큼, 중국에 대한 반감이 자연스럽게 정치적으로 이어진다. 각종 커뮤니티를 보면 홍콩·대만·신장 위구르· 남중국해 등 중국과 관련한 갈등 사안에서 중국을 성토하는 댓글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인 젠더 갈등도 중국 문제 앞에서는 사그라들 정도다.

이러니 최근 정부와 여당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태도를 둘러싸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감도는 위화감을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한국이 다른 서방 국가들처럼 외교적 보이콧을 감수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 선언의 무대쯤으로 생각했던 데 있다.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을 진지하게 고려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종건 외교부 차관이 보이콧 국가 선수들이 “외로울 것 같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을 리 없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의 부재’는 신기한 일이다. 정부가 나름의 계산으로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국회는 중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냉전기 미 행정부는 한국의 군사 정부를 지지했지만, 미 하원에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감시를 견지했다. 국력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우리 여당은 이상하리만큼 중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작다.

많은 청년이 중국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데, 국민을 대의 한다는 정치인들은 그러한 불만을 전혀 대변해주지 않으니 위화감과 불신을 느끼기가 너무 좋다. 그 불신이 아마 “그 세대는 왜 그렇게 중국을 좋아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으레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비롯한 ‘실리’가 거론된다. 요컨대 청년층은 실리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신기하게도 미국과 일본을 대할 때는 바로 실리를 놓아버린다. "실리를 이유로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우려를 표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앞다투어 해리스 대사를 비판했다. 여기에는 "대사가 조선 총독처럼 군다"는 모욕적 발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무역 전쟁을 촉발했던 징용공 보상 판결에서도 "역사 문제에 관한 원칙적 사안이자 사법부의 고유 판단"이라고만 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같은 ‘실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말인가.  
 

중국에만 너그러운 집권세력의 이중잣대 

서방과 중국을 놓고 보여주는 이런 이중잣대 때문에 ‘원칙보다 실리’라는 민주당의 변명은 앞뒤가 안 맞고 궁색할 수밖에 없다. 사실 냉전기 미국처럼 정부, 의회, 시민 사회가 원칙과 실리를 놓고 의견을 통일할 이유는 없다.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최대한 실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의회와 시민 사회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조율하며 정책을 추진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박병석 국회의장(더불어민주당)이 베이징 올림픽 축하 사절 대표단으로 가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의 국회는 오히려 중국에 대한 비판 요구를 어떻게든 회피하게끔 도와주는 수단이 된 것 같다. 물론 야당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중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한국의 위상과 책임이라는 맥락에서 중국에 미온적인 여당과 진지한 논쟁에 임한 기억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청년들 대부분이 중국을 싫어한다”는 발언을 두고 민주당 강선아 대변인은 “망언이 국경을 넘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이 경솔했던 것과는 별개로 청년층 반중 정서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부딪히는 문화 전선을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반중 정서를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실리’를 내세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은 걱정스럽다. 한류의 확산과 중국의 굴기라는 추세를 보았을 때, 한국 대중문화를 둘러싼 온라인 문화 전쟁은 앞으로 격화하면 격화했지 단기간에 사그라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층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을 낳고 나아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증오로 번진다면? 이미 날아오고 있는 청구서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민주당은 이렇게 손을 놓았는지, 의아하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헌기의 인정불가] 중국에서 구하는 실리는 미·일과는 다릅니다
[홍태화의 별별시각] 중국은 우정·존중의 올림픽 정신 준수하라
임명묵 작가 글에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 대변인과 홍태화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국제관계 전공)의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임명묵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