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몸을 천시하고 너무 정신적인 것에만 치우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몸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데 반해 정신은 이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구체적 현실은 어렵고 힘들다. 결국 보다 쉬운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에서 위로를 찾으려다 사람들이 점점 더 관념적인 것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정치가 그렇지 않은가.
판사 법봉과 목수 망치 무게는 다르다
망치질하는 노동자는 제 자식이 더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되길 바란다. 판사의 망치는 물리적으론 노동자의 망치보다 가볍다. 그러나 그 망치질에 누군가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에 책임감은 훨씬 더 무겁다. 그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노동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 나는 판사와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김제동 역시 단지 판사보다 숫자가 더 많은 노동자를 꼬드기려고 달콤한 말을 늘어놨을 것이다. 그마저도 노동현장에서는 비웃음을 사기에 딱 알맞았지만.
내가 숱한 현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은 대부분 이런 마음으로 일한다. 노동현장에서 평생을 일해온 베테랑일수록 노동관은 절대 도덕을 추구하는 도인에 가까웠다. 못질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다. 자재 낭비 없이 알뜰하게 쓴다. 앞선 공정에서 다른 누가 빼먹거나 실수한 게 있어도 불평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본인 작업 과정에서 고쳐나간다. 공사현장에서 인격을 연마하고 성숙시켜온 게 훤히 드러나 보인다.
노동자 권리 짓밟는 노조 시위
지난해 우리 현장에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번갈아 와서 시위를 벌였다. 며칠간 투쟁가를 틀어놓아 머리가 돌 뻔했다. 나는 주로 갱폼(외벽 둘레에 작업을 위한 발판을 설치한 것)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조의 확성기 소리는 벽에 반향을 일으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참다못해 투쟁 차량에 가서 "노랫소리가 너무 커서 작업하기 곤란하니 볼륨을 좀 줄여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저는 여기 갱폼에서 일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도 아닌 거 같은데 노랫소리가 너무 커서 정신이 사나워 일을 못 하겠습니다. 볼륨을 줄여주세요.” 그랬더니 노조원들이 나를 에워싸며 위협했다. “뭐야 당신! 우린 신고하고 합법적으로 시위하는 거야. 꺼져!” “저 새끼 뭐야, 어디 와서 지랄이야. 죽고 싶어?” 볼륨 줄여달라는 부탁 한마디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하기야 나라님도 뭐라 못하는 노조에 일개 노동자가 대들었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수금하러 왔구만"
민노총의 요구사항은 시스템의 공정을 달라는 거였다. 이미 다른 업체와 계약이 되어있는데 그걸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달란다. 이렇게 수주를 따내어 노조에 속한 영세 업체에 팔아 수익을 낸다. 기가 막히다.
이런 걸 연일 목격하다 보니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수명을 다했다고 느낀다. 아직은 거대한 조직으로 철옹성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진짜' 노동자들이 그들을 외면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어찌 외면하지 않을 수 있겠나. 노동자의 권익이 아니라 귀족노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으니. 노동하지 않는 노조 운동가들은 관념의 세계를 팔고 있다. 권력과 결탁한 그들의 위세와 당장 눈앞의 물리적 위협이 무서워 지금은 아무도 맞서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들은 현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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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건설노동자의 글에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남택(필명) 건축사가 답글 형식의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각각 4000자, 3000자에 달하는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 이두수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