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는 왜 남자를 미워해?"
게임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툭툭 레디컬 페미니즘이나 워마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범죄 현장에서 여자 경찰은 왜 도망가서 시민에 피해를 줘?" 온라인을 달궜던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불만스러워 한다. 일반화할 수 없는 특이한 개별 사건을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엄마, 솔직히 여자는 경찰로 뽑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힘도 약하고 범인도 못 잡는데 여자 경찰 숫자를 계속 늘리는 건 뭔가 잘못된 거 같아”라고 말한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만큼 힘이 쎈 여자도 있어. 그리고 경찰이 힘쓰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 경찰도 범죄자 많이 잡아서 상 받잖아”라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여보았으나 녀석들 머릿속엔 이미 여경 무용론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엄마 말에 설득당하기는커녕 질문의 강도가 더 세진다. "페미만 도와주는 여성가족부는 없애는 게 맞지 않아? 혹시 엄마도 페미라서 전에 여성가족부 공무원 했던 거야?" 과거 개방직으로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을 했던 경력이 이렇게 소환된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란 편견
성폭력 피해 얘기도 했다. "엄마는 왜 자꾸 여자들 편만 들어?" 대화의 중심엔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불법촬영 우려 탓에 여자들은 불안해서 공중화장실을 갈 때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녀석이 "엄마 페미 맞네. 여자 편만 들잖아. 왜 여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해? 남자가 화장실에서 몰카촬영 당한 사건도 있는데"라고 한다. 많은 여성이 화장실에서 빈번하게 몰카 촬영의 피해를 보는 문제와 남성이 어쩌다 몰카 촬영을 당하는 건 등치 될 수 없는데도 여자만 피해자로 언급된다는 생각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된장녀만큼 한남충 혐오도 문제
맞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입에서 나온 ‘한남충’은 몇몇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된장녀, 틀딱, 진지충…. 소비를 과하게 하는 여성, 틀니 착용할 만큼 나이 많은 사람, 모든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들인데 비하가 핵심이다. 분명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지 않다. 공존 아닌 대립을 전제로 한 혐오의 용어들이다.
여기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평생 부엌일 한 번 안 하고 칠순 넘은 어머니를 부려먹는 아버지, 월급 대부분을 제 몸치장하는데 사용하는 누이, 세상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는 꼰대가 우리 주변에 흔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는 또 바쁜 배우자를 위해 식사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남편, 적은 월급이지만 이웃과 나누며 사는 여동생, 청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차별과 싸우는 일은 여성 혹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부정하는 목소리에 저항하는 건 남녀노소 모두의 몫이다. 차별,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된 특정 성별에 속한 사람만의 몫은 아니다.
차별 비판하며 차별의 옷을 입진 않았나
차별을 혐오하면서 우리 스스로 차별과 배제의 옷을 겹겹이 입고 있는 건 아닌가? 낡은 통념과 싸우다가 우리 스스로가 또 다른 통념의 낡은 틀 안에 갇힌 건 아닐까?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의 ‘잘못된 생각’인데 공존해야 할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에 골몰하여 소통의 창구가 닫혀 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 남자들은 죄다 한남충이야’, ‘젊은 여성들은 된장녀들이야’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우리가 배제해야 하는 차별이고, 지양해야 할 폭력적 사고다.
우리의 지향점은 갈등이 아닌 공존이어야 한다. 다름을 존중하고 차별을 배제하고 공존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 한남충이라는 단어 안에 모든 남성을 집어넣을 수 없다. 된장녀라는 단어 안에 모든 여성을 집어넣어서는 안된다. 개별적 행위를 전체화하는 것, 사상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는 건 우리가 지양해야 할 폭력이다.
페미니즘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평등과 공존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던 페미니스트의 또 다른 이름은 '휴머니스트'가 아닐까. 휴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는 갈등을 딛고 공존이라는 더 나은 세상으로 전진할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의 휴머니즘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