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쿡방’이 아니고, 118년 전의 글이다. 일본 작가 무라이 겐사이(1864~1927)가 1903년 호치신문에 연재한 소설 『식도락』 중 ‘여름’의 한 대목이다. 사계절에 걸쳐 총 4부작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600여종. 이 방대한 저작이 한국에서 출간 중이다. ‘봄’편은 지난해, ‘여름’은 지난달 나왔고, ‘가을’과 ‘겨울’이 출간 준비 중이다. 각 400페이지가 넘는다.
무라이 겐사이의 1903년작 『식도락』
전4권 우리말로 번역하는 박진아
"음식에 그 사회의 문화와 전통 담겨있다"
음식의 실감나는 묘사부터
식생활 관련 서술까지
박진아씨는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 언어정보과학전공으로 나쓰메 소세키(1867~1916)를 연구한다. “같은 시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던 중 이 작품이 아주 흥미로웠는데 한국에서 번역된 적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조선,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식재료, 조리법, 음식을 다룬 내용이 한국의 현대인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일본이 제국주의 노선을 본격화하던 시기에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대하게 된 변화가 보인다. 문화가 특히 민간에서 어떤 식으로 융합하고 변화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무라이 겐사이는 메이지 시대의 천재 문인이다. 어려서 다양한 외국어와 지식을 교육받았고 12세에 도쿄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우울증 등으로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 돌아와 1년 동안 연재한 『식도락』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막대한 인세를 벌었고,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과일, 채소, 동물을 기르며 자급자족했다.
소설은 남녀 한 쌍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순박한 시골뜨기 먹보 청년 오하라, 똑똑하고 당차며 요리를 잘하는 아가씨 오토와다. 오토와가 대부분의 요리를 소개하면서 스토리가 이어진다. 박진아는 “여주인공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고 했다. “혼자 요리를 공부하고, 뛰어난 지식으로 남성들을 가르친다. 또 원치 않는 결혼을 할 바에는 요리 교실을 열어 자립하겠다고 하는 인물로, 비참할 정도로 낮았던 메이지 시대 여성들의 지위에 비춰봤을 때 인상 깊은 인물이다.”『식도락』의 ‘가을’ 편은 내년 출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