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팀만 33개 베를린필…“작은 팀들이 명문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24 14:25

제32회 이건음악회의 영상 녹화에 참여한 베를린필의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왼쪽부터 헬레나 마도카 베르그,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크리헬, 도리안 쏙씨, 박경민, 크리스토프 히쉬. [사진 이건]

제32회 이건음악회의 영상 녹화에 참여한 베를린필의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왼쪽부터 헬레나 마도카 베르그,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크리헬, 도리안 쏙씨, 박경민, 크리스토프 히쉬. [사진 이건]

세계적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체 단원은 110여명이다. 바이올린ㆍ첼로와 같은 현악기, 플루트ㆍ오보에ㆍ호른 등의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들이다. 하지만 다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만 하지는 않는다. 현악기 연주자 넷의 4중주 팀, 관악기 주자 5명의 팀처럼 ‘유닛’으로 연주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베를린필의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유닛, 즉 실내악 팀은 현재 몇개일까.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이건음악회 영상 공연

답은 33개다. 베를린필이 홈페이지에 ‘실내악 그룹’으로 공식 소개하는 팀의 숫자다. 여느 오케스트라보다 많고, 유럽의 명문 악단과 비교해도 많다. 하나의 예로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로열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카메라타 RCO’와 ‘콘서트헤보우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두 팀이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필은 작은 규모의 앙상블을 중요하게 여기는 악단이다.

베를린필의 작은 그룹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어떤 영향을 줄까. 2018년 베를린필에 수습으로 입단해 이듬해 최초로 한국인 정식 단원이 된 박경민(31ㆍ비올라)은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베를린필의 활동 중 20%는 실내악”이라며 “모두가 오케스트라만큼이나 실내악 연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소개했다.

박경민은 2018년 다른 단원들과 함께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을 결성했다.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단원 도리안 쏙씨(Xhoxhiㆍ37), 헬레나 마도카 베르그(37), 첼리스트 크리스토프 히쉬(26)와 함께 하는 현악4중주 팀이다. 히쉬는 베를린필 단원이 아니지만 이 팀의 창단 멤버다.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한국의 이건음악회의 영상 공연에 참여했다. 올해 32회째인 이건음악회는 코로나19로 다음달 4일 영상 방영된다.

쏙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베를린필에서 연주할 땐 규모가 큰 실내악단이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며 "작은 팀들이 명문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본다"고 했다. “그만큼 거의 모든 단원이 앙상블 활동을 하고 있고, 단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언제나 호흡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합주의 규모가 커져도 결속력이 단단하다.”

쏙씨는 아르메니아 태생으로 2010년에 베를린필 멤버가 됐다. 그는 “우리 4중주팀의 멤버들도 다른 실내악팀에 중복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베를린 바로크 솔로이스츠, 현악8중주단, 12인의 첼리스트, 현악5중주 등이다”라고 했다.

베를린필은 팀 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박경민은 “멤버들이 실내악단을 결성하면, 오케스트라와 활동 시간이 겹칠 경우 양해를 얻어 실내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쏙씨는 “4중주로 연습하고 공연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며 “오케스트라 연주와 방식이 달라 정확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의 3분의 1 정도를 4중주단 연주에 쓴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베를린필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공연장과 별도로 실내악을 위한 홀을 가지고 있어 이들 팀이 공연·녹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33개의 팀 중 오래되고 대표적인 곳은 12인의 첼리스트다. 베를린필의 첼리스트 12명이 1972년 라디오 방송에서 처음 선보인 후 관심을 모았고, 재즈ㆍ탱고와 같은 장르를 뛰어넘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현대의 작곡가들은 이들을 위한 작품도 여럿 썼다.

박경민과 쏙씨의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베를린필에서 신생, 최연소 팀에 속한다. 쏙씨는 “모든 팀마다 고유의 소리와 정체성이 있다”고 했고, 박경민은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연주하고, 연습 시간도 더 긴 점이 우리 팀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하이든ㆍ모차르트에서 시작해 20세기의 하르트만ㆍ슐호프까지 다양한 작품을 연주했고, 최근엔 이스라엘 작곡가 보리스 피고바트(68)의 현악4중주 2번을 세계 초연했다.

코로나19로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공연이 한동안 불가능했던 점도 베를린필의 ‘유닛’ 활동을 늘렸다. 쏙씨는 “지난 시즌엔 두 개의 이벤트가 중요했는데, 베토벤과 수크의 실내악 작품을 연속으로 연주한 마라톤 공연들이었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무대가 사라지면서 작은 규모의 실내악 공연 기획이 집중적으로 열려 온라인 페스티벌로 스트리밍 중계됐다. 쏙씨는 “팬데믹 기간에 실내악팀이 새롭게 구성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필 홈페이지에 소개된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왼쪽부터 비올라 박경민, 바이올린 도리안 쏙씨, 헬레나 마도카 베르그, 첼로 크리스토프 히쉬. [홈페이지 캡처]

베를린필 홈페이지에 소개된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왼쪽부터 비올라 박경민, 바이올린 도리안 쏙씨, 헬레나 마도카 베르그, 첼로 크리스토프 히쉬. [홈페이지 캡처]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이건음악회에서 독일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크리헬과 함께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 작품번호 81을 녹화했고, 이 영상은 다음 달 4일 오후 8시부터 7일동안 이건음악회 유튜브, 토마토TV 등에서 볼 수 있다. 박경민은 “팬데믹 기간에 녹화 공연에 많이 익숙해졌다. 합주의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쏙씨는 “크리헬과 음악적 언어가 비슷해 편안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동안 유럽 페스티벌 등에 참여해온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내년 4월 독일 바덴바덴 축제에서 단독 공연하고, 5월 베를린필의 실내악홀 무대에서 연주한다. 박경민은 “언젠가 한국에서도 라이브로 공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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