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동안 당나귀 주인 아리츠와 엘레나의 도움으로 연습은 해 보았지만 오늘부터는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긴장한 나를 보고 아리츠가 말했다.
“택씨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것은 당나귀가 결정합니다. 당신은 그 결정에 따라 주기만 하면 돼요.”
아무 걱정 말라는 말이 더 부담되는 건 무슨 심리일까.
“택씨. 엘레나가 다음 마을까지 데려다 줄 거예요. 그 뒤부터는 둘이서 데리고 가세요. 솔직히 우리는 메스키 보다 당신들이 더 걱정입니다. 하하하”
메스키는 동키호택의 본래 이름이다.
산티아고까지 790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뒤로 하고 당나귀와의 여행길에 올랐다.
다른 방법은 냇물 속을 걸어서 건너는 것이다. 다행히 수심이 얕아 자동차도 쉽게 지나다니는 정도였다. 당나귀를 냇물로 끌고 가려는데 엘레나가 말했다.
“택씨 당나귀가 결정할 거예요. 믿고 맡겨보세요.”
목줄을 느슨하게 하고 그의 결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호택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저 없이 나무다리를 건넜다. 나도 몰래 안도와 기쁨의 박수를 쳤다.
“호택아 잘했어. 정말 잘했어. 으이구 이쁜 놈.”
당나귀는 아이와 같아서 칭찬하고 자주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푸르렀다. 앞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사유지라 그런지 동물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약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철제 빔을 깔아 놓았다. 동물들이 이 길로 들어서면 발목이 빠져 부러질지도 모른다. 말이나 당나귀가 지나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쪽문은 자물통이 굳게 채워져 있었다. 난감하기는 엘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농장 건물은 사람이 적막했다.
이때 농장 한 구석에 튼튼하게 보이는 나무판자가 보였다. 그래도 1미터 정도가 모자랐다. 장애물에서 먼 곳에 있는 2미터 정도의 철판은 혼자 들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이때 뒤쫓아 오던 단체순례자들이 다시 나타났다.
“부엔 카미노”
“부엔 카미노”
인사를 나누는데 이들 중 남자 몇 명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와서 철판을 함께 들기 시작했다.
“땡큐 그라시아스”
여럿이 낑낑대며 철판을 들고 가고 있는데 세상에나. 저쪽에서 호택이가 점프를 하는 게 아닌가. 나무판자를 밟고 오던 호택이가 펄쩍 뛰어 장애물을 넘은 것이다. 이를 본 순례자들이 환성을 질렀다.
“나이스 동키”
“당나귀에게 통제당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걸 막아서도 안 됩니다. 당신이 당나귀를 통제하는 방법은 유일하게 목줄입니다. 당신은 방향만을 정하고 가는 방법은 오로지당나귀에게 맡기세요.”
당나귀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은 단호한 말과 목줄이 유일하다. 당나귀는 절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당나귀는 힘들면 그 자리에 선다. 위험한 걸 봐도 선다. 당나귀 귀는 레이다와 같아서 180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소리를 채집한다. 소음의 원인을 확인하면 귀는 제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도 침착하지만 숲속을 지날 때 사소한 새소리에 놀라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중국 속담에 ‘당나귀가 가지 않는 길은 결코 가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단. 당나귀가 설 때는 다 이유가 있다. 괜히 고집 피우는 게 아니고 주인을 골탕 먹이려는 행동도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이 섰을 때 움직인다. ‘그러니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네 갈 길이나 가란 말야’ 당나귀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강제와 자율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
함께 걷다가 엘레나와 헤어지기로 한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고 당나귀는 식당 앞마당에 시원하게 똥을 쌌다. 식당 주인은 껄껄 웃으며 말라 퍽퍽해진 바게트 두 개를 호택이에게 먹여주었다.
“택씨, 우리는 호택이 걱정 안 해요. 당신들이 더 걱정입니다.”
엘레나를 보내고 우리는 호택이와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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