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삼성전자 노사가 사상 첫 임금 협상에 들어가는 가운데 노조 측이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주로 경기도 성남시 판교 일대에 입주해 있는 정보기술(IT) 업체들 사이에서 이뤄졌던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삼성전자에도 적용해 달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연봉 ‘일괄 인상’ 움직임에 대해 생산성 향상 기대 효과가 있지만, 되레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조 “2000명 설문으로 인상액 정해”
전국삼성전자노조(이하 노조)는 이를 위해 지난 13일부터 임협 초안에 관한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다음 달 초 공개할 계획이다. 노조의 임금 협상안 초안은 ▶전 직원 계약 연봉 일괄 1000만원 인상 ▶코로나19 격려금 지급(인당 약 350만원)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 ▶자사주 지급(인당 약 107만원) ▶하위 고과 임금 삭감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항목이 연봉 1000만원 일괄 인상 주장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직원이 11만 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조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전체 1조1000억원 규모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 11만 명의 평균 보수는 1억2700만원이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사내 자율기구인 노사협의회를 통해 기본 인상률 4.5%, 성과 인상률 3% 등 7.5%의 임금 인상률을 정했다.
최소 1조 이상 소요… “최종안 아니야”
그러면서 노조 측은 올해 초 게임업체 넥슨에서 시작된 연봉 ‘일괄 인상 릴레이’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넥슨은 지난 2월 인재 확보를 위해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넷마블·엔씨소프트·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게임·IT 기업들로 확산했다.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에 대해서는 ‘1300만원 플러스알파(+α·성과급)’ 인상, 비개발 직군은 ‘1000만원 +α’ 인상을 내놨다.
과거 2014년 부영그룹이 “재계 순위 상승에 따라 ‘몸집’에 맞는 대우를 한다”며 전체 직원의 연봉을 일괄적으로 1000만원 올린 사례가 있지만, 그동안 재계에서 연봉 일괄 인상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연봉 일괄 인상은 新성과주의? 독배?
게다가 ‘귀하신 몸’이 된 개발인력 모시기 차원의 성격도 있다. IT 분야에서 우수 인재 공급난을 겪으면서 이들의 임금 협상력이 커진 것이다. 일부 기업은 개발인력에 대해 대졸 초봉 5000만·6000만원 지급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른바 ‘깜깜이’ 성과분배 시스템을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영됐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거지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합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노조도 이를 인식해 매년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기 진작과 생산성 향상 기대
다만 이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넥슨에서 근무하는 A씨는 “처음 800만원 연봉 인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직원들이 무척 좋아했지만 업계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돼 이제 인상 사실을 체감하는 직원이 별로 없다”며 “외려 회사 안에서는 ‘왜 보직이나 연차와 관계없이 똑같은 금액을 올렸느냐’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내 익명게시판에서 (일괄 인상안에 대해) 구성원의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전했다.
‘원조’ 넥슨선 “체감도 낮아져” 목소리
연봉을 일괄 인상한 엔씨소프트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11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15% 늘어났다. 넥슨과 넷마블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반대로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 업체는 ‘인력 블랙홀’이 된 몇몇 유력 회사에 밀려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는 경영자협회에서 지나친 인건비 상향을 조정한다”며 “우리나라 역시 사용자 단체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성실히 교섭 임할 것”
노조는 협상 최종안을 확정하기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라이브 방송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삼성전자 사측은 “성실히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