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 시절 선대위 특보로 활동했던 이른바 청주 ‘활동가’라는 간첩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F35 전투기 도입에 대해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선거에 개입하려고 했던 사건이 최근 드러나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끝없이 우리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공작을 벌이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장관님은 북한, 혹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세력들이 정말 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북한의 인식과 별개로 우리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대로 통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도 있습니다. 이인영 장관은 최근 제가 제기한 평화적 흡수통일론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 "전쟁이나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 자주적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애초에 흡수통일이라는 단어를 전쟁과 하나로 엮고, 그에 대비되는 형태의 통일을 평화, 자주 통일로 놓은 것 자체가 통일부 장관의 언어도단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흡수통일이었지만 평화적이었고, 경제적인 격차는 구(舊) 서독의 사회제도로 잘 병합이 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힘주어 표현한 자주통일은 통일을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 당사자 간의 상호 협의를 통해 이뤄야 한다는 원칙으로 보입니다. 어느 누구도 외세의 개입을 통일의 한 방법으로 주장한 사람은 없지만 종종 자주통일이라는 개념을 미군철수와 엮어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의 인식이 그 활동가들과 닿아있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평화와 자주를 강조한 것은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제안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3원칙인 자주, 평화, 민주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원칙인 민주는 왜 언급하지 않는 겁니까. 저에 대한 반박에서 유독 민주만 쏙 빠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통일국가가 민주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면 평화와 자주라는 절차적인 방법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꿈꿨을 때 그 결과물이 대한민국의 국제(國制·나라의 제도)를 바탕으로 한 통일국가인지, 아니면 북한의 제도와 인식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 교육, 사회, 문화, 국방 어느 분야에서도 북한의 제도가 우리의 가치로 편입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우리의 체제가 모든 면에서 북한의 그것보다 우월한 상태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흡수통일입니다.
만약 흡수통일이 아니라면, 민주적 가치에 대한 정통성과 일관성의 문제는 꼭 따져봐야 합니다. 동독 서기장을 지낸 호네커는 서독의 흡수통일 이후 과거 민간인 수백명을 즉결처분으로 살해한 혐의 등에 대해 서독의 사법제도로 재판받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가까운 미래에 통일을 하게 된다면 통일국가는 멀게는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을 일으켰던 사람들에 대해 어떤 심판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천안함 폭침의 주동자로 지목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우리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피살한 북한의 범죄자들에게는 어떤 단죄를 할 수 있을까요?
통일 후 북한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통일국가의 정통성은 현재 북한 집권세력과의 협상보다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과정 속에서 성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4·19와 5·18 당시 발포를 명령한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인 단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자부심이고 지향점입니다. 그렇다면, 설령 북한과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론을 추진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통일국가를 형성하려면 통합 과정 속에서 지금껏 우리가 해왔던 사관과 제도로 통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물은 비민주적인 것일 테고 지금 대한민국의 국제 보다도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물론이요 젊은이들 역시 통일 이후에 우리의 현충원이 북한의 혁명열사릉과 동격에 놓이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민주와 인권의 잣대로 평가하면 둘은 동격에 놓일 수도 없고 놓여서도 안 됩니다. 이제 통일론과 상생론을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제도와 사관을 통해 단일 국가체제로 합쳐지는 것이 통일론이라면 현충원과 혁명열사릉에 묻힌 모두를 각자 존중하는 것이 상생론입니다.
젊은 세대가 대북정책, 아니 통일 자체에 대해 점점 관심을 덜 갖는 이유는 통일론과 상생론을 적절히 버무린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담론들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민족주의에 기반해 독재자와의 상생 담론이 주류가 되어있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전두환과 김정은, 남과 북의 이 두 독재자에 대한 평가는 일관되어야 하고 정파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문 대통령의 연방제는 빛 좋은 개살구
통일부는 작은 규모의 부처이고 국정철학에 따라서 매번 하는 일이 큰 진폭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부를 거치더라도 민주와 인권이라는 지향점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수립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 버팀목을 든든하게 세우지 않고 큰 진폭으로 대북정책이 변하는 상황에서 통일부는 그 기능과 활동에 대해서 꾸준한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