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최OO 소개로 투자하신 IDS홀딩스 말이에요. 사기 같으니까 얼른 돈 빼세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어안이 벙벙해진 A씨는 쉽게 아들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11월이 만기야. 3개월만 있으면 엄마도 더는 안 할 거야. 이거 아까운 거야. 지금 빼면 그동안 받은 이자 다 토해내야 해.”
아들은 자신이 넣었던 2000만원가량의 돈은 미국에 가기 전 이미 정리한 뒤 어머니 A씨를 위해 IDS홀딩스 동향을 살펴왔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당시 아들 말을 듣지 않았다.
[1회] 금융사기공화국의 피해자들 : “사기꾼은 죽어서도 속인다”
기존 투자자에 새 투자자 돈으로 매달 수익을 주는 건 100년 전 미국 다단계 금융사기의 원조 ‘폰지 사기’(주범 찰스 폰지) 때부터 오랜 돌려막기 수법이다. 한국의 금융사기 역시 대부분 이 공식을 따랐다.
그후 5년 원금 1억5000만원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비바람·눈보라 헤쳐가며 노점을 해서 억척스럽게 모아온 재산이었다. 체중이 10㎏가량 빠져갈 때쯤 심상찮은 낌새를 챈 남편 B씨의 추궁 끝에 사기를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최씨는 IDS홀딩스 미래지점 소속 중간 모집책(미래 대전지점장)이었다. 대형 증권사 자산관리사 행세를 하며 상담료로 20만원을 받고 가짜 재무상담을 해줬다. 그러면서 “‘FX(Foreign Exchange·외환)’ 마진 거래 사업 등 김 대표가 운영하는 해외 사업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투자하면 그 수익금으로 매월 1~10%의 이익배당을 보장하고, 1년 후에 원금을 돌려주겠다”며 재산의 대부분을 IDS홀딩스에 투자하도록 했다. 실제 증권사 사무실에서 직원 행세를 하고, A씨가 자신을 통하지 않고 직접 돈을 입금하도록 했다.
같은 수법으로 수백명을 속인 최씨는 결국 2019년 7월 법원에서 방문판매법 위반, 유사수신규제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의 남편 B씨는 “최씨가 초래한 피해액만 142억원이 넘는데,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어딨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기 혐의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재판장은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거나 무리하게 투자한 피해자들에게도 다소 피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책임이 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B씨는 “서민들은 호소할 데도 없다. 결과적으론 최씨보다 판사가 더 미웠다”고 말했다.
라임·옵티머스 “‘안전하다’는 은행 자산관리사(PB) 말 믿었는데…”
5대 사건을 합쳐 12만명에 육박하는 피해자들은 저마다 사연이 다르지만, 취재진과 만난 이들은 대개 A씨 부부처럼 알뜰히 모은 목돈을 은행이자보다 좀 더 불려보려 했던 서민·중산층이었다. 사모펀드 사기 사건인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건의 경우 수익률보다는 판매사인 제도권 은행·증권 자산관리사(PB)들의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모아둔 돈을 전부 맡겼다가 피해를 봤다.
2019년 11월 디스커버리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이 터졌을 때 김씨는 담당 PB에게 “라임도 불안하니 이자는 됐고 빨리 돈을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PB는 “그럴 일 없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돌아온 건 이석증·임파선염 등 병치레와 변제금 500만원뿐이었다. 판매사인 우리은행은 현재 원금의 61% 배상을 약속한 상태다.
옵티머스 사건 피해자 C(65)씨도 “NH투자증권에서 안전하다는 얘기만 안 했어도 안 샀을 것”이라고 했다. 6개월짜리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고 해서 다소 의아했지만 “공공기관이 부도만 나지 않으면 6개월 뒤 정상적으로 100% 환매된다”는 PB의 말을 믿었다.
C씨는 “금리가 연 2.8%면 이자 떼고 1% 정도의 수익률을 감수하고 들어간 거라 고수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며 “심지어 중간에 돈 필요할 때 수시로 중도 환매가 된다고도 해 안전하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금융감독원의 100% 배상 결정으로 투자금 수억원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던 그는 “남들은 로또 맞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당하게 돌려받은 돈”이라며 “판매사가 투자자에 책임을 물으려면 검증부터 똑바로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VIK 사건은 무인가 금융회사를 차린 뒤 유망 벤처기업 투자 명목의 크라우드펀딩을 빙자해 1조원대 불법 투자금을 모은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이다. 부모와 함께 투자해 1억2000만원을 날린 방씨는 “단순히 액수보다는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들인 시간이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아 허탈했다”고 말했다.
“돈 돌려준다” 모집책 꼬임에 “사기꾼 선처” 탄원서 서명도
IDS홀딩스 사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연합회 측에서 김성훈 대표의 공판을 방청하려 법원에 갈 때마다 또 다른 무리의 피해자들이 다가와 “김성훈을 빼내야 변제를 받을 수 있다”며 삿대질과 욕설을 하곤 했다. 피해자 B씨는 “김성훈과 감방에 같이 있던 ‘한모’라는 자가 먼저 출소해 지점장들을 모아 놓고 ‘김 대표가 출소해야 변제가 가능하다’고 속여 피해자 수천명으로부터 김성훈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기꾼들에게 피해자는 감옥에서도 2차, 3차 기망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역대 최대 규모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은 주범을 법의 심판대에조차 세우지 못했다. 대부분이 2011년 12월 조씨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검찰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사기꾼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속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해자 유모(67)씨는 범행 막바지인 2008년 5월 뒤늦게 조희팔 일당이 운영한 다단계 업체 ㈜리브의 의료기 렌탈 사업에 1억원을 넣었다.
유씨는 “그해 9월 경찰이 리브 서산센터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이 조사를 받을 때도 사업은 잘 진행됐고 돈도 나왔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익금이 10월에 끊기기 전까지 돌려막기라고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조희팔은 그해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피했고, 유씨 1억원도 사라졌다. 유씨는 “조희팔은 모은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피해자를 더 많이 유치하는 걸 강조했다는 점에서 악질 중의 악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