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39세에 작곡한 피아노곡 ‘숲의 정경’ 곳곳에는 어두운 감정이 들어있다. 작품은 ‘숲의 입구’로 시작해 ‘이별’로 끝나는 총 9개 곡의 모음이다. 슈만은 4번째 곡 ‘저주받은 장소’의 악보에 시를 옮겨 적어놨다. 숲의 한복판에 핀 빨간 꽃에 대해 ‘인간의 피를 빨아들인 것’이라 묘사한 내용이다.
피아니스트 원재연(33)은 지난달 말 시작한 전국 투어 독주회에 슈만 ‘숲의 정경’을 연주곡으로 넣었다. 슈만이 26세에 작곡한 판타지(환상곡), 브람스의 변주곡을 함께 연주한다. 묵직하고 진지한 독일 음악 구성이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낭만시대 독주회
"작곡가와 작품의 의미를 전하는 작업"
작품을 연구하고 문헌을 섭렵하는 학구적 피아니스트다. 이번 독주회도 그렇게 계획하고 있다. “슈만은 판타지를 작곡하면서 당시 17세밖에 안된 연인 클라라에게 악보를 검사받듯 보내며 의견을 물었다. 결국에는 클라라 의견대로 마지막 부분을 고쳤는데, 원래 버전이 더 작곡가의 뜻에 맞다고 본다.” 원재연은 슈만이 원래 썼던 악보대로 판타지를 연주할 예정이다. “클라라는 뛰어난 신동 피아니스트였고 슈만은 상대적으로 열등감이 있었다. 슈만의 원래 악보대로 연주하면서 그런 마음을 잘 드러내고 싶다.”
원재연은 여기에 ‘숲의 정경’을 함께 연주한다. “슈만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은 부분이 많다. 적은 음으로 전위적인 표현을 한다. 나름대로 19세기를 넘어서 현대적인 시도를 해봤던 것 같아서 이 곡을 꼭 청중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다.”슈만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브람스의 작품도 더했다. “슈만과 브람스는 같은 낭만시대 작곡가지만 대척점에 있다. 그 대비를 보여주고 싶다.”
그는 “음악에 대해 모두 알고 싶어 많이 찾아보고 공부하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유롭게 음악을 풀어놓기를 목표한다. “존경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을 만나보면 지식을 늘어놓지 않더라. 아무리 많이 알아도 내 마음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원재연은 2017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청중상을 수상하면서 국제 무대에 알려졌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1995년)인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은 그에 대해 “천부적이고 진한 재능이 있다”고 했다. 원재연은 유럽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하이든 오케스트라, 웨스트작센 심포니 등과 협연했고 독일 본 베토벤 하우스, 뮌헨 헤라클레스홀 등 명문 공연장 무대에 섰다.
원재연의 독주회는 이달 21일 광주광역시, 26일 부산을 거쳐 다음 달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