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근로자의 전직 지원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진척이 없었다. 노사가 모두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전직 지원을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받아들였고, 경영계는 비용 증가를 우려했다. 이 바람에 폐업이나 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나는 근로자만 덩그러니 노동시장에 팽개쳐졌다.
[뉴스분석]
정부가 이날 내놓은 노동전환 지원 방안에는 노동전환 지원금, 노동전환 특화 공동훈련센터 설립 등 14개나 되는 신설 대책이 들어있다. 이 대책들이 겨냥한 곳은 딱 하나다. 일하고자 하면 자신에게 맞는 직무를 찾도록 도와주고, 그 직무로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아니라 평생 일거리 개념이다.
정부 대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급 학습 휴가제와 전 국민 디지털 교육(직업능력개발지원)이다.
◇유급 학습 휴가
프랑스·독일·영국·스웨덴·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이 제도를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학습휴가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도 주목하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휴가 기간은 장기간이 원칙이다. 최고 1년 또는 1200시간이다. 임금은 80~100% 지원된다, 훈련비는 종류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다르다.
이 휴가는 근로자의 권리다. 사업주가 거부할 수 없고,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연기만 가능하다. 휴가 기간 동안 근로 제공 의무는 면제된다. 학습휴가 뒤 복직을 거부하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이런 방식은 한국의 공무원 연수교육과 같은 형태로 국내에선 공무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공무원이든 민간이든 학습 휴가를 권리로 보지 않는다. 회사가 시혜를 베풀 듯 배분하는 복지정책으로 여긴다.
독일도 직무와 상관없는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학습휴가를 부여한다. 주(州)마다 다양하지만 대개 1년에 5~6일, 2년에 8~12일 정도를 준다. 베를린 주는 25세 이하의 근로자에게만 2년마다 10일씩 학습 휴가를 준다. 브레멘주는 근로자가 아닌 실업자, 주부, 노령연금생활자에게도 학습휴가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에도 유급 학습 휴가제도는 있다. 그러나 직무와 관련된 사안만 가능하다. 직무전환훈련과 같은 전직을 위한 대응은 어렵다. 중소기업은 5일 이상, 대기업은 30일 이상이다. 지원금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이를 최저임금의 150%에 주휴수당, 훈련수당을 얹어주는 지원책을 내놨다.
문제는 노사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지 여부다.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실제로 2007년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노사정이 모두 반발했다. 경영계는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연차휴가를 거론했다. 훈련을 휴식과 동일시하는 셈이다. 심지어 당시 교육부도 "수천 억원이 넘게 드는 예산 확보가 쉽지 않고, 유급학습휴가제 의무화 방안 자체도 문제가 있다. 주5일 근무제와 연·월차를 잘 활용하면 굳이 학습휴가 명목의 또 다른 휴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노동계는 '구조조정의 발판 또는 전 단계'로 인식하며 반대했다.
편도인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총괄과장은 "경제와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전직 지원은 노사 공동의 책임과 협력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선진국은 이미 하는 평생교육의 본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 국민의 디지털 교육도 추진하기로 했다. 디지털 신기술 분야 직업·직무능력 개발 지원을 위한 '전 국민 직업능력개발 지원' 대책이다. 이를 위해 '근로자 직업능력 개발법'을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으로 개정해 모든 국민이 지능 정보화를 비롯한 직무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길을 트겠다는 게 골자다.
이 정책은 2019년 6월 12일 독일이 도입해 진행 중인 것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경영계·노동계·전문가가 수년 간의 난상토론을 거쳐 자국 내 모든 노사단체와 주 정부까지 17개 노사정 단체가 손을 잡고 파트너십으로 전국적으로 시행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 방안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정부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그나마 국민내일배움카드나 K-디지털 크레딧 같은 기존 제도를 확대하는 정도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향후 관련 단체의 참여 확대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범국민 프로젝트로 꾸려나갈 방침"이라며 "학습휴가와 디지털 교육에 필요한 세부 사안을 계속 다듬고, 추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