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땡 하면 2분만에 '완판 막걸리'···곰표 붙으면 대박,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06:00

수정 2021.07.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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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분이 한강주조와 협업해 내놓은 '표문 막걸리' [사진 대한제분]

 
대한제분이 한강주조와 협업해 만든 ‘표문 막걸리’. 매일 오전 9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를 시작하면 2분 만에 하루 판매량 200박스(박스당 4병)가 동나곤 한다. 최근 두 달여 동안에만 1만7000박스가 팔려 나갔다. 표문 막걸리의 ‘표문’은 대한제분의 브랜드 ‘곰표’를 뒤집어 표기한 것으로, 막걸리를 거꾸로 흔들어 마시는데 착안해 작명했다. 
 

3년간 '곰표 콜라보' 제품만 20여개  

14일 유통가에 따르면 곰표 밀가루를 만드는 대한제분이 때 아닌 ‘곰표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콜라보(협업)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8년부터 밀가루와는 그닥 상관없이 출시하는 이색 콜라보(협업) 상품이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열광을 받으며 완판 행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박을 터트린 게 바로 ‘곰표 밀맥주’다. 세븐브로이맥주와 협업해 지난해 5월 편의점 CU에서 처음 출시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매달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CU에서 지난 달까지 하루 평균 17만 캔씩 팔렸고, 총 판매량은 600만개가 넘는다. 지난 5월엔 생산량이 판매량을 못 쫓아가 2주간 발주 중단이 빚어지기도 했다. 맥주 발효 등에 2주 정도가 걸려서다. 이후에도 TV광고 한번 없이 카스·테라 등을 제치고 CU에서 맥주 매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곰표 밀맥주. [중앙포토]

 
곰표는 맥주뿐 아니라 최근까지 콜라보한 제품만 스무 개가 넘는다. 화장품·겨울패딩·떡볶이·치약·주방세제·후라이팬 등 종류도 다양하다. 대한제분엔 요즘도 다양한 협업 러브콜이 쇄도한다. 대한제분 김익규 마케팅본부장은 “유명 백화점과 호텔·리조트에서도 협업 제안이 들어온다”며 “연말까지 너댓 개의 콜라보 제품을 더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곰표에 대한 러브콜은 몇년 전부터 유행한 복고 열풍 덕분이란 분석이다. 특히 ‘레트로(옛 것)’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New+Retro)’가 MZ세대한테는 주요 트렌드가 됐다. 장수 브랜드와 협업한 이색 제품이 쏟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 단발성에 그치는데 반해 곰표 콜라보는 3년간 지속되고 있고, 점점 흥행을 더하는 모습이다. 
 

곰표 콜라보 제품 인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동의 짝퉁 옷이 콜라보 계기 

곰표가 ‘롱 런’하는 이유가 뭘까. 브랜드 전문가들은 “뉴트로의 핵심이 ‘반전과 재미’인데, 곰표가 이를 잘 드러내는 제품을 골라 꾸준한 협업으로 브랜딩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사실 곰표의 콜라보는 우연한 계기에 시작됐다. 2017년 12월 슈퍼주니어 신동이 곰표 상표를 도용한 ‘짝퉁’ 스웻셔츠를 입은 사진을 접하면서다. 

 
상표권 도용을 문제삼을 상황이었지만 대한제분은 이를 만든 무명 의류업체(4XR)를 찾아가 오히려 협업을 제안했다. 대한제분의 김 본부장은 “곰표 밀가루는 1955년 나온 브랜드지만, 2017년 설문조사를 했더니 20대 대부분이 곰표를 모르더라. 곰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며 “젊은층이 즐겨 쓰는 상품과 협업해 곰표란 브랜드를 알려보자는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2018년 7월 4XR과 한정 수량으로 내놓은 곰표 티셔츠는 완판됐고, 2019년 11월 내놓은 곰표 패딩도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4XR은 작년까지 곰표 의류 매출만 5억원을 올렸다. 대한제분은 10·20대 여성에게 인기인 화장품 스와니코코와 ‘곰표 쿠션팩트·선크림’을, 영화관 CGV와 ‘곰표 팝콘’을, 애경과 ‘곰표 치약’ 등을 내놨다. 
 
곰표의 마스코트인 백곰(하얀색)을 부각시키는 제품을 주로 골랐다. MZ세대 사이에서 홍보효과가 커지자 다양한 업체에서 협업 제안이 잇따랐다. 지난 3년간 핸드폰 케이스(삼성전자), 주방세제(LG생활건강), 떡볶이(쿠캣마켓), 베이커리(롯데백화점), 후라이팬(해피콜), 치킨너겟(하림) 등 다양한 콜라보 제품이 탄생했다.  
 

대한제분 밀가루 브랜드 곰표와 온라인 쇼핑몰 4XR이 콜라보 한 곰표 패딩. 중앙포토

'반전과 재미'로 66년만에 쿨하게 재림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이색 콜라보를 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곰표는 MZ세대에 친숙한 화장품, 식품을 찾아 릴레이식으로 이색 상품을 내놓으며 계속 흥미를 유발했다”며 “또 MZ가 열광하는 굿즈(상품)와 희소(한정 판매) 마케팅을 잘 활용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LG전자 등을 거친 마케팅 전문가인 최명화 서강대(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지금 성공은 곰표가  MZ와 몇 년간 정성들여 놀아온 결과”라며 “곰표가 MZ에 ‘재밌는 친구’로 포지셔닝됐고, 오래된 브랜드가 쿨해졌다. 곰표 콜라보 제품의 인기가 지속되는 이유”라고 짚었다. 
 

2018년부터 3년간 출시된 곰표의 다양한 콜라보 제품들. 중앙포토

 
대한제분은 협업 제품 매출에서 일부를 라이선스(상표권) 대가를 받고 있다. 대한제분의 김 본부장은 “라이선스 수익보다도 곰표가 이제 젊은층에 익숙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성과가 더 크다”면서 “작년 말 추산해보니 18억원가량의 광고 효과를 거뒀다. 앞으로도 패션·뷰티·식품업계와 다양한 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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