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현대차와 기아의 한 지붕 아래 두 가족간 경쟁도 격화하고 있다. 기아는 첫 전기차 EV6의 스펙을 공개하며 앞서 공개한 현대차 아이오닉5보다 더 뛰어난 최대 주행거리와 1kWh(킬로와트시)당 전비(용량 대비 주행거리) 등을 내세웠다. 당장 기아가 EV6 스펙을 공개한 당일부터 포털의 전기차 동호회에선 "갈아타야 하는 아니냐"는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아이오닉5와 EV6는 각각 3만대 이상의 사전예약을 기록했지만, 사전예약 조건이 '예약금 10만원'에 불과해 변심하는 소비자도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
12일 기아에 따르면 EV6의 배터리 용량은 아이오닉5보다 4.8kWh가 더 높다. 5kWh 용량이면 고속도로에서 약 30㎞를 더 달릴 수 있다. 또 EV6의 완전 충전 후 최대 주행거리는 475㎞로 아이오닉5(429㎞)보다 46㎞를 더 길다. 각각 19인치 타이어를 장착한 후륜 구동 모델(빌트인 캠 미적용) 기준이다. 주행거리는 전기차 태동기부터 지금껏 소비자의 관심이 가장 높은 지표다. 이에 따른 전비도 EV6가 5.4㎞로 아이오닉5(5.1㎞)를 살짝 앞선다. 도심 주행으로 한정하면 EV6가 6.1㎞, 아이오닉5는 5.9㎞이다.
"아이오닉5는 디자인, EV6는 고성능"
EV6와 아이오닉5의 세부 스펙이 차이를 보이지만 탑재한 배터리는 SK이노베이션이 개발·생산한 파우치형(NCM 811) 셀로 똑같다. NCM 811은 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를 양극 활물질로 구성한 '하이니켈' 배터리로 1L당 에너지 밀도는 약 450Wh(와트시)다. 두 차종의 배터리 성능이 같지만, 전비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아이오닉5는 유틸리티, EV6는 성능에 각각 기반을 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 배터리 안전에 중점
현재 코나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조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기차 초기에 '안전'에 더 큰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전기차는 충·방전 시 안전을 위해 총용량 대비 약 5~10%의 여유 공간을 두는데, 현대차는 코나 EV에 대해 5% 이내의 안전 마진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안전마진을 낮게 책정할수록 주행거리는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아이오닉5는 현대차그룹의 첫 전용 전기차로서 상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전 전기차 모델보다 안전에 방점을 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 '배터리 무사고' 자신감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방향성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는 '차박과 같은 유틸리티가 강한 전기차', 기아는 '고성능 전기차'로 지향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양사는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시장에서 서로 충돌을 피하는 방향으로 전기차를 개발해왔다"고 설명했다. 아이오닉5는 차박, 가족, 편의성을 앞세운 컴포트(편안한) 전기차를 표방했지만, EV6는 드래그 레이스에 출전하는 등 애초부터 고성능 전기차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어 "현재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는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를 가장 큰 구매 기준으로 삼는다"며 "앞으로 두 모델의 판매전이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