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전남 구례
주문 들어가야 닭 잡는 집
산닭으로 요리한 육회·숯불구이
산나물의 향연, 만원짜리 백반
하루 말려 보들보들 가오리찜
100% 우리밀 빵지순례 성지까지
주문이 들어가야 닭을 잡는다고 해서 미리 ‘산닭구이(6만원)’를 예약했다.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코스 요리다. 애피타이저는 닭 육회. 가슴살과 모래주머니(닭똥집), 껍질이 한 주먹씩 나왔다. 기름소금에 조금씩 찍어 먹어봤다. 가슴살은 광어 회처럼 부드러웠고, 모래주머니와 껍질은 꼬들꼬들했다. 비린내는 전혀 안 났다.
당골식당 김문섭(45) 사장은 100일 된 암탉만 고집한다. 그보다 어리면 먹을 게 없고 늙으면 살이 질겨져서다. 주중엔 하루 10마리, 주말엔 40마리를 잡는다. 산수유꽃이 만개할 때는 하루 70마리까지 잡는다. 김 사장은 초봄마다 골병이 든다고 한다.
1%만 아는 우리 밀의 맛
장종근(39) 대표가 빵을 시작한 사연이 흥미롭다. 독일 교환학생 시절, 그는 매일 빵을 먹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독일 빵 맛을 추억하며 취미 삼아 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빵을 배웠고 2016년 고향인 구례에 빵집을 열었다.
목월빵집은 100% 우리 밀만 쓴다. 호밀, 앉은뱅이밀, 고대밀 등을 적절히 섞어서 쓴다. 제피, 쑥부쟁이 같은 지역 식재료도 활용한다. 장 대표는 “우리 밀은 모양내기가 힘들지만, 맛과 풍미는 수입산에 뒤지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신선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곡물이 밀이다. 그러나 국산 밀 자급률은 1% 수준이다. 1970년대 수입산에 밀려 고사했던 국산 밀을 1990년대 어렵게 되살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수입 밀을 주식으로 먹는다. 90년대 우리 밀 복원 운동을 주도한 구례에 목월빵집이 존재하는 건 우연이 아닐 테다.
목월빵집의 빵 맛은 처음엔 심심했다. 그러나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긋했다. 많이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았다. 여러 빵 중에서 쑥부쟁이 치아바타(4000원)가 인상적이었다. 들기름과 대추를 넣어서 친근한 맛이었다.
순면 이불 같은 가오리 살결
배도 꺼뜨릴 겸 섬진강 둑길을 걸었다. 굽이치는 강 뒤편으로 지리산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데 강가의 나무가 죄 물살 방향으로 누워 있었다. 수해의 흔적이다. 지난해 8월 사흘간 500㎜의 물 폭탄이 구례에 쏟아졌었다.
예부터 구례에서는 장충동 스타일의 족발이 아니라 국물 자작한 족탕을 먹었다. 구례군 김인호 홍보팀장은 “고기가 귀하던 시절 족탕은 보양식이나 산후조리 음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설명했다.
족탕(중 2만원, 대 3만원) 맛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콜라젠 덩어리 살을 우걱우걱 씹다가 청양고추를 넣은 국물을 떠먹으면 느끼함이 싹 가셨다. 가오리찜(중 2만5000원, 대 3만5000원) 맛도 각별했다. 생선 살이 순면 이불처럼 보들보들했다. 김길엽(74) 사장은 “족발은 집에서 3시간 삶아오고, 가오리는 하루 말린 걸 쓴다”며 “준비 과정이 번거로워 웬만한 식당에서 족탕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몰디브 바다 닮은 청록빛 육수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붙어 있는 구례 토지면에 다슬기 수제비 전문 식당이 모여 있다. 28일 아침 ‘토지다슬기식당’을 가봤다. 이 식당의 수제비(8500원)는 국물 빛이 남달랐다. 몰디브 바다가 떠오르는 영롱한 청록빛이었다. 부추를 갈아 넣었다는 수제비 반죽 때문에 국물이 더 파래 보였다.
왕경순(58) 사장은 “수입산 다슬기를 쓸면 절대 이런 색이 안 나온다”고 강조했다. 토지다슬기식당은 왕 사장의 동생 왕상윤씨가 잡은 섬진강 다슬기만 쓴단다. 구례에서 섬진강 다슬기 어획 자격을 가진 사람은 왕씨를 포함해 10명뿐이다.
독특한 빛깔만큼 국물 맛이 돋보였다. 보기엔 맑았지만, 깊고 진한 다슬기 향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하루 전 반죽해서 숙성했다는 수제비는 야들야들해서 국수처럼 술술 넘어갔다. 왕 사장은 “다슬기도 제철이 있다”며 “산란철인 여름을 앞둔 4~6월 다슬기가 가장 맛있다”고 설명했다.
백반 시켰는데 반찬 20개가 쫙
지리산식당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아침에는 전날 만들어둔 찬을 내주니 신선한 반찬을 맛보고 싶다면 점심에 찾는 게 좋다. 버섯 전골을 시키면 엄나무순장아찌, 곰취나물처럼 귀한 나물 두 종을 더 내준단다.
구례=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