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는 2010년대 소형 원통 이차전지에 이어 지난해 전기차용 중대형 파우치 셀로 다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중국에 역전당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의 체질이 드러났다"며 "글로벌 배터리 경쟁이 본격화는 상황에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정부가 기술 변화에 맞춰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하고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이끌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성적이고 방향성 잃은 정부의 배터리 정책에 먼저 책임이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정부의 산업 기술 정책은 이차전지 산업 초창기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1990년대 후반 수준으로 퇴조했다."며 "특히 인력양성·기술개발·기반구축 등 국가 연구·개발(R&D)의 뼈대만 있고 알맹이 없는 낙제점"이라고 꼬집었다.
[코어테크가 미래다]②전기차 배터리
"정부가 큰 전략 짜고 희귀 광물 확보해야"
정부가 전극재 소재인 희토류 등의 확보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배충식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한계에 다다를 때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한 기초 기술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원료·소재가 없으면 모든게 불가능한만큼 '터미네이터(결정적 자원)'가 될 희토류 등을 정부가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 리튬·니켈 같은 광물을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구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도 한때 정부가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뛰기도 했지만 그 실패가 각인된 때문인지 이후 정부에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 또 배터리업계와 자동차 업계간 '각자도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2000년 초반 'G7 프로젝트'처럼 정부가 나서서 주요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로 배터리 로드맵을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며 "배터리 3사, 소재 기업, 학계가 각자도생으로 가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중국의 연구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기간에 성과를 낸 건 정부를 비롯한 업계가 머리를 맞댄 결과이며, 또 그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를 지급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LG·SK 분쟁도 배터리 인력 부족서 비롯"
배터리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잘해야 차세대 배터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선 "수명이 긴 이차전지 핵심 소재와 기술 개발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특히 기업과 학계는 기본으로 돌아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스몰 사이즈 연구과제’를 먼저 하고, 정부는 폭넓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야 10년 후 '진짜 차세대 이차전지' 시장을 선점할 발판이 된다. 기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