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업계 관계자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 ‘반도체 지원책’ 발표
R&D 세액공제 최대 50%로 확대
규제 완화, 인허가 기간 절반 단축
전문가 “특별법 만들어 지원을”
10년치 반도체 용수 물량 미리 확보
실무·전문인력 3만6000명 양성 계획
판교에 ‘한국형 팹리스 밸리’ 조성
차 반도체 관련 구체적 대책 빠져
이 때문에 단순 세제·금융 지원뿐 아니라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물과 전기 같은 인프라 확충, 인력 확보 등 사실상 전 부처를 총동원한 전방위 대책이 담겼다.
우선 정부는 용인·평택 등 반도체 핵심 단지에 10년치 반도체 용수 물량을 미리 확보할 예정이다. 반도체 생산에 물이 중요하다는 업계 지적을 받아들였다. 또 핵심 전략기술 관련 송전선로 등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면 비용을 정부와 한전이 최대 절반 범위에서 공동 분담한다.
규제도 푼다. 화학물질 취급시설은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인허가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다. 또 외국 기업이 주로 요구했던 수입용기 검사 면제 및 방호벽 설치 기준도 완화해 외국 투자 물꼬도 틔울 예정이다.
실제 이를 바탕으로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생산 독점기업인 ASML은 총 2400억원 규모의 트레이닝 센터를 경기도 화성에 구축하기로 했다. 세계적 반도체 장비회사인 램리서치도 기존 제조시설을 2배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도 투자를 확대한다. SK하이닉스는 지금보다 2배 수준의 8인치 파운드리(위탁생산) 능력 확보를 검토 중이다. 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연계한 특화단지도 육성한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떨어지는 분야였던 패키징 분야는 괴산·천안·온양 등에 생산기지를 조성해 플랫폼으로 키운다. 또 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판교를 ‘한국형 팹리스 밸리’로 조성한다.
미·중 견제 속 반도체 초격차 지키기 … 인력·자원 총동원령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포함해 10년간 3만6000명가량 실무 및 전문인력을 추가로 양성한다는 방침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인프라와 교육 등 범부처를 통합한 지원책을 내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세액공제는 연구개발(R&D)·시설투자를 중심으로 대폭 확대한다. 이를 위해 조세특례법상 핵심전략기술 세액공제 항목을 신설할 예정이다. 현재 계획대로면 R&D는 최대 50%(대·중견 기업 30~40%, 중소기업 40~50%), 시설투자는 최대 20%(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 투자 증가분 4% 가산)까지 확대한다. 업계가 요구한 50% 세액공제에 거의 근접한 지원이다. 현재는 신성장·원천기술에 한해 R&D 최대 40%, 시설투자 12%까지만 세액공제를 해줬다.
다만 특혜지원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대기업과 중견·중소 기업 세액공제에 차등을 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자본재 산업이라 대기업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차라리 대기업은 세액공제를 더 늘리고 그 이익만큼 재투자를 유도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액공제 분야도 늘린다. 기존 신성장·원천기술 분야 세액공제는 아직 상용화 전 기술만 지원해 실제 공제를 받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설하는 핵심전략기술 항목은 양산시설까지 범위를 확대해 혜택을 줄 예정이다.
1조원 이상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도 신설해 8인치 파운드리 증설과 소재·부품·장비 및 첨단 패키징 시설 투자도 지원할 예정이다. 또 미래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R&D 투자에 기존 1조5000억원에 10년간 1조원 더 추가 지원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올해 41조8000억원을 포함해 오는 2030년까지 510조원 이상의 반도체 민간투자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아직 난관은 남았다고 지적한다. 과거 반도체는 ‘원래 잘하는 분야’라는 인식 때문에 지원이 인색했다. 그나마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등 영향으로 계기를 간신히 마련한 만큼 말이 아닌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반도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용수나 전력 인프라 확보, 반도체 학사 정원 확대 같은 정책은 기존 규제와 충돌할 수 있는데 특별법을 제정하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며 “특별법을 제정해 안정적 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관련 대책은 중·장기 과제로 남았다. 산업부는 이날 현대차와 삼성전자 업계 관계자, 공공연구기관과 함께 차량용 반도체 연대·협력 협약식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생산과 투자계획이 나오진 않았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