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사는 A씨(60·여)는 2년 전 아들(34)을 독립시켰다. A씨는 “남편과 딸까지 네 식구가 무주택으로 살아왔는데 결혼을 앞둔 아들이 집을 사겠다며 먼저 세대분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모두가 일을 하는데 소득합산 때문인지 그동안 분양·청약을 숱하게 넣어도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아들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싱글즈]②싱글세대 900만…집 때문에 '한 지붕 두 세대' 된다
A씨는 “집이 뭔지 자식들과 같이 살고 싶었지만 같이 사니 손해더라”며 “아들이 연애를 오래하고도 집 문제로 결혼을 못했는데 요즘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서 딸도 독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1인세대’ 시대가 가속화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집 문제가 꼽히고 있다. 수도권의 집값 폭등 여파로 아파트 청약 등을 위해 ‘한 지붕 두 세대’의 세대분화를 택하는 집들이 급증해서다. 그래서인지 2019년 현재 수치상 ‘1인세대’는 실제 혼자서 사는 사람을 뜻하는 ‘1인가구’보다 234만명 정도 많다.
집 문제와 관련한 세대분리 추세는 민원제기 부분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행안부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전입신고와 관련된 민원 167건 가운데 세대분리와 관련된 민원은 55%(92건)에 달했다. 세대분리를 요청하게 된 이유로는 '주택청약'이 92%를 차지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직장·교육 등을 이유로 독립세대를 이루는 젊은층이 늘어난 데다 최근 부동산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세대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인세대 배경엔 '집' 문제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값 상승과 주택난으로 영끌하는 젊은층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세대 분리를 하고, 무주택이라는 청약 자격이 세대 분할을 촉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1세대 1주택자를 우선으로 한 부동산 정책 역시 1인세대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무주택 세대주에게는 공공주택 청약 자격이 주어지고 민간분양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집값이 계속 오르다 보니 다주택자가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의 중과를 피하기 위해 세대분리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가 만 30세 이상이거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익이 있거나 결혼해 독립세대를 구성하면 세대 분리를 할 수 있다.
김씨 부자는 얼마 전 아들이 송파구에 아파트를 사면서 각각 20억원, 9억원의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 경우 김씨는 6억원을 공제받아 14억원에 대해, 아들 역시 6억원을 공제받아 3억원에 대한 종부세를 각각 납부해야 해서다. 하지만 아들이 세대분리를 할 경우 각자 1세대 1주택자가 돼 세금이 확 줄어든다. 김씨는 70세 이상인 데다 20년 이상 주택을 장기보유해 1세대 1주택자 혜택인 9억원 공제 외에도 최대 80%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른바 ‘내 집’과 ‘내 공간’을 원하는 젊은층이 늘어난 것도 1인세대 증가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KB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주로 직장·학교 등의 이유로 1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난해는 자발적으로 독립생활을 선택했다고 한 응답자가 더 많았다. 1인 생활을 시작한 이유로는 ‘혼자 사는 게 편해서’라는 답변 비율이 36.6%로 가장 높았다.
달라지는 '주거 선호' 경향
26㎡(8평) 월셋집에서 살던 직장인 박모(27·서울 영등포구)씨는 두달 전 43㎡(13평)짜리 오피스텔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전세 보증금의 80%를 대출받긴 했지만, 집 상태가 깨끗하고 경비원이 있는 곳을 선택했다. 박씨는 “잠만 자는 공간이어도 집 환경에 따라 기분이 우울해지기도 해 절약보다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라 재택근무가 늘어난 것도 주거형태 변화에 영향을 줬다. 박씨는 “이전 원룸에는 책상이 없었는데 새로 이사온 집은 책상과 의자가 있는 데다 침실과 거실도 나뉘어 있다”고 했다.
박씨는 또 “전·월세 대출 지원 등 정부나 지자체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고들 하는데 안정적으로 집을 사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잠시 거쳐 가고 현재에 안주하게 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며 “아직 결혼 계획이 없는데도 ‘내 집은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내 집 마련 욕구가 있으며, 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가령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어야 신청 가능한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공공주택 사전청약 물량의 25% 수준인데, 적어도 이 가운데 5%는 싱글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현예·최은경·이은지·김준희·박진호·백경서·최연수, 영상=조수진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