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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묘 양육 방식 달라 독립"…'나혼자 산다' 벌써 900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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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세대가 올해 처음 9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국내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음에도 ‘1인세대’는 2016년 744만명에서 지난해 906만명까지 불어났다. 정부는 향후로도 세대분화 속도가 더욱 빨라져 1년 내에 싱글세대가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포분열을 하듯 싱글세대가 증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젊은세대들이 역대급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독립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고민과 세대분화 양상 등을 짚어봤다. 특별취재팀

지난 1월 오정민(30)씨는 작정하고 짐을 쌌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부모님 집에서 나와 그가 고른 건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조타운에 있는 한 오피스텔. 부동산 발품을 팔아 미리 ‘찜’을 해놨던 집이다. 빠듯한 재정 상황이지만 ‘무리’를 했다. 이곳을 별렀던 이유는 단 하나. 거실에서 탁 트인 공원을 볼 수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절, 남들에겐 호사스런 소리로 들릴까 싶지만 속으로 몇번씩 계산기를 두드렸다.

[싱글즈]①집, 일자리, 정서독립…싱글세대는 이렇게 늘어난다

그는 ‘린더’란 일정정보 플랫폼을 만든 스타트업 히든트랙을 이끌고 있다. 최근엔 심리상담 비즈니스를 기획 중이다. 코로나19는 그의 삶을 바꿔놨다. 집에서 일해야 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서다. 집이자 일터인 유일한 공간에서만이라도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싱글세대들은 왜 송파구에 몰렸을까.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는 송파구의 이점을 산책과 자전거타기가 가능한 탄천, 석촌호수로 꼽았다. 탄천에서 오 대표가 따릉이를 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싱글세대들은 왜 송파구에 몰렸을까.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는 송파구의 이점을 산책과 자전거타기가 가능한 탄천, 석촌호수로 꼽았다. 탄천에서 오 대표가 따릉이를 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처음부터 송파구에 자리를 잡으려 한 건 아니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이곳을 저울질했다. 그러던 그에게 눈에 들어온 건 석촌호수와 탄천. 자전거 타고 다니길 좋아하는 그에게 안성맞춤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지하철 8호선이 닿아있고, 내로라하는 '핫'한 IT회사들이 몰려있는 판교와도 가까웠다. 재산목록엔 차는 없다. 대신 공유차를 타고, 따릉이 정기권을 끊어 타고 다닌다. 이렇게 절약한 돈으론 청약저축과 재테크를 한다.

“대학 가면서 집과 독립 많이 생각”

싱글세대들은 왜 송파구에 몰렸나.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임현동 기자

싱글세대들은 왜 송파구에 몰렸나.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임현동 기자

오씨는 대학에 들어가며 독립과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고시텔, 하숙집, 셰어하우스에서 살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지만 다시 독립선언을 했다. 그는 “임대료를 아껴서 집을 마련하는데 투자하면 된다는 걸 알지만, 당장의 심리적인 안정과 내 공간, 내 시간이 필요해 독립을 하게 됐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세대는 막연하게 독립하고 싶어하는 세대인 것도 같다”며 “경제적인 상황처럼 현실적인 문제로 독립을 하지 못할 뿐 독립적 성향이 강한 친구들은 어떻게든 집에서 나오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독립선언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대학 진학이나 취업, 결혼 등에 따라 독립을 했던 것과도 전혀 딴판이다. 직장인 염지원(27·경기 일산시)씨는 4년 전 어엿한 ‘세대주’가 됐다. 서울 강남에 일터와 일산에 있는 집을 오가려면 4시간이 걸리지만 단호하게 독립을 결심했다. 그는 “반려묘를 키우는데 가족과 '양육 방식'이 달라 고양이를 잃어버릴뻔 하면서 독립 생각이 굳어졌다”고 했다. ‘무주택 1인 세대주로 살면 주택청약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독립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염씨는 “가족과 살던 집에서 그간 끊임없이 사회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한다”며 “부모와의 스몰토크,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상을 공유하는 것들에서 독립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서독립 필요…취업 기회는 서울에 많아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올해 1년차 무주택 세대주인 변모(28·서울 중랑구)씨는 ‘정서독립’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룸메이트와 생활 패턴을 맞출 필요 없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며 “가족과의 트러블 등에서 벗어나거나 정서적인 독립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정서독립에 성공하자 또다른 관심거리가 생겨났다. 바로 집이다. 그는 “자가 마련을 위해 투자 연습 중”이라며 “주택 관련 정책을 알아보거나 주식투자를 하고, 정부가 내놓은 취준생, 사회 초년생을 위한 전세대출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위해 독립을 하는 1인세대는 여전히 많다. 제주도가 고향인 오모(27·서울 마포구)씨는 올해 8년째 홀로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대학 입학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다 자취로 돌아섰다. 그는 자신의 독립을 ‘수단적 독립’이라고 칭했다. 한 달에 120만원씩 생활비가 들지만, 서울에서의 취업 기회가 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여겨서다. 오씨는 “스스로 세대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지난해 재난지원금을 받곤 ‘아, 내가 세대주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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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세대 10만명 넘는 '싱글도시' 급증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인세대만 중소도시 규모인 10만명이 넘는 ‘싱글들의 도시’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만 해도 1인세대가 10만이 넘는 곳은 경기도 수원시와 성남시, 서울 관악구 등 8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5년 뒤인 2020년엔 15곳으로 불어났다. 도시개발 등 여파로 경기도 화성시와 용인시, 평택시, 천안시 등의 1인세대가 10만을 넘겼고, 서울에선 강서구와 송파구가 신규 '싱글도시'에 합류했다.

싱글들의 도시, 들여다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싱글들의 도시, 들여다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국 싱글도시 중 1인세대가 가장 많은 곳은 수원시(19만2488명)다. 이어 서울 관악구(16만288명)와 경기도 성남시(15만4631명) 등에도 15만명이 넘는 1인세대가 산다. 수원에서도 가장 많은 1인세대가 몰려있는 곳은 팔달구 인계동(1만2069명)으로 전체 세대의 57.2%가 1인세대다. 인계동은 수원시청이 위치한 곳으로 지하철과 버스 등의 교통 요충지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영화관, 병원 등 편의시설도 밀집해 있다. 인계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오피스텔과 고시원, 원룸 등 1인가구에 적합한 주거형태가 많아 1인세대가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가족에 종속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스스로 독립하고 싶어 세대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반면 국가는 기존의 가족, 출산 등에 기반을 둔 정책들을 고수하고 있어 ‘국가로부터 도움받는 게 전혀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이 세대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현예·최은경·이은지·김준희·박진호·백경서·최연수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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