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가족을 대신해 삼성전자는 28일 “의료공헌 1조원과 미술품 기증 등 사회 환원을 실천한다”며 “국가 경제 기여와 인간 존중, 기부문화 확산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이어간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또 고인이 남긴 삼성 계열사 지분과 미술품·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유가족은 2026년까지 5년간 6회에 걸쳐 상속세를 연부연납할 예정이다.
삼성 일가 “유산 26조 상속세 12조”
국보 미술품 등 2만3000여점 기증
감염병·소아암 등 지원에 1조 기부
이건희 경영철학 “사회 공헌하라”
상속세율 58.2% 적용, 미국은 40%
유가족 5년간 6회 걸쳐 분납 계획
구체적 지분 배분은 공개 안 해
삼성 일가가 발표한 사회환원 계획 중 미술품 기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점과 보물 46점을 포함해 2만3000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된다. 감정가 3조원대,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상당 부분이 기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의료공헌 방식으로 1조원을 기부한다. 이 중 절반인 5000억원은 2026년까지 서울 중구 방산동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쓰일 예정이다. 국립감염병연구소에도 2000억원이 지원된다. 나머지 3000억원은 소아암이나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 지원에 쓰인다.
상속세 세계적으로 유례 없어…잡스의 3배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주요 재산으로는 삼성전자(4.18%)와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이 있다. 상속세 부과 기준으로 18조9600억원어치다. 여기에 미술품과 부동산, 현금 등을 더하면 총 26조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에 전자 지분 넘기지 않고 정공법 택해
유가족 측은 30일 과세당국에 총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신고할 예정이다. 주식 상속세의 경우 최고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로서 20% 할증, 자진신고 공제율 3%(실효세율 58.2%)를 적용해 11조300억원대로 추정된다. 향후 국세청 세무조사를 거쳐 최종 세액이 확정된다.
지금까지 국내 최대 상속세는 2018년 별세한 고 구본무 LG 회장의 유족이 연부연납하고 있는 9215억원이다. 지난해 1월 타계한 고 신격호 롯데 회장 유족은 국내에 3200억원을, 일본에 13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 중이다. 삼성 일가는 연부연납을 신청해 2026년까지 6회에 걸쳐 상속세를 분납할 계획이다. 연부연납을 하더라도 유가족은 우선 30일까지 2조원대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간 재계에선 삼성 일가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고 이 회장 소유의 예술품을 매각하거나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주식을 넘겨받을(유증)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주식을 증여받으면 유가족은 당장 6조원가량의 상속세를 절세할 수 있다. 삼성 측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미술품과 의료 기부 등을 포함해 4조원대 사회환원 계획을 내놓았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상속세를 포함하면 상속 재산의 60%를 내놓는 셈”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삼성전자를 통해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건희 생전 “문화유산 보존은 의무”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구조를 유지·확대하는 방향으로 이 회장의 보유 지분이 배분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을 이 부회장에게 넘기고, 삼성생명 지분을 가족 4명에게 분할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의 지분구조는 현재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삼성물산(19.3%)→삼성생명(8.5%)→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17.33%)과 삼성전자(0.7%), 삼성생명(0.0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법정 상속비율을 적용하면 홍 전 관장이 9분의 3, 이 부회장 등 3남매는 각각 9분의 2 지분을 받게 된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에게 주식을 몰아줄 지가 유가족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라며 “워낙 큰 기업이다 보니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정적 지분 확보가 어렵고, 따라서 삼성의 지배구조가 계속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현주·문희철·권유진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