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에 열린 한국 최초의 근대미술단체인 서화협회의 첫 전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엔 안중식과 함께 어진화사(御眞畵師·왕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로 활동한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작품을 비롯, 청운 강진희(1851~1919), 위창 오세창(1864~1953), 해강 김규진(1868~1933), 소호 김응원(1855~1921), 우향 정대유(1852~1927), 관재 이도영(1884~1933) 등 서화협회 발기인 9인의 작품과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 작품 등 38점이 나왔다. 전시를 기획한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1918년 서화협회를 결성한 13인 중 한 사람인 청운 강진희와 서화협회 발기인들의 제자였던 규당 김재관(1898~1976)의 후손이다.
근대서화 거장 안중식의 ‘성재수간’
서화협회 100주년 기념전에 전시
황병기, 그림 보고 ‘밤의 소리’ 작곡
어진 그리던 조석진 작품도 공개
이 그림은 가야금 연주자인 고(故) 황병기(1936~2018) 명인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KBS 방송국을 찾았다가 녹음실 기사 방에 걸린 복사본에 매료된 것. 황 명인은 생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현대화도 아닌 전통적인 동양화가 이런 구도인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녹음 기사에게 다른 그림을 주기로 약속하고 복사본을 그 자리에서 얻었고, 그날 집에 가져오자마자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 곡이 바로 ‘밤의 소리’다.
전시엔 안중식이 1910년대 그린 대나무 그림(‘랑간임풍’)과 기러기 떼 그림(‘노안도’) 등 산수화도 함께 나왔다. 조석진의 팔준도(八駿圖)도 눈길을 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여덟 마리의 준마를 세필로 역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밖에 서화협회 3대 회장이었던 정대유의 예서 작품(1910년대)과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이 1949년에 쓴 서예작품도 볼 수 있다.
청운은 관료이자 서화가로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의 수행원 중 한 명으로 1887~88년 미국에 갔다. 당시 공관원 중 유일한 서화가로 현지에서 ‘승일반송도’(국립중앙박물관), ‘화차분별도’(간송미술관) 등을 그려 남겼다. 김소연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1921년 서화협회 전시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전보다 1년이나 앞선 참신한 시도였다”며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도판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 공개됐다”며 반겼다. 전시는 30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