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 선거 벽보에 즐비한 12명의 후보를 보셨죠. 거대 양당을 빼면 낯선 후보, 작은 목소리들입니다. 중앙일보 2030 기자들이 3040 후보들을 만나봤습니다. 서울시민에게 전하는 그들의 신념과 열정의 출사표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30일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여의도의 한 원내정당 사무실. 당 대표의 책상 위에서 눈에 띈 뜻밖의 물건이다. 수많은 정책자료집과 보도자료 등이 뒤엉킨 책상 곳곳엔 펭수를 향한 책상 주인의 애정이 묻어 나왔다. 의자 위에는 펭수 방석까지 놓였다.
[서울시장 3040 후보]
기호⑥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
“유통기한 지난 386 기득권 정치”
신 후보의 첫 답변은 간결했다.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의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지긋지긋한 정치권의 세 싸움, 유통기한 지난 386 기득권 정치로는 코로나19 이후와 박원순 이후의 새로운 서울이 불가능하다”며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으로 새로운 서울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간 80만원의 기본소득 내걸어
나아가 신 후보는 서울시장 권한을 활용해 최대 50%까지 재산세를 증세해 2조1000억원을 확보하고 토지세와 탄소세 등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12명의 서울시장 후보 중 유일하게 기본소득 공약을 전면으로 내건 신 후보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는 “압도적인 3등을 목표로 한다”는 답변을 했다. 신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제외하고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3등을 한 후보의 지지율이 3%를 넘은 사람은 고 노회찬 의원이 유일했다”며 “그 기준을 뛰어넘는 것이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유권자가 3%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한다.
기본소득엔 관심, 페미니즘은 반응 갈려
신 후보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 추문은 누구도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회 문제를 드러냈다”며 “진정한 성 평등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일상이 된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선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 성폭력 전수조사·성별 임금격차 타파·무상생리대 도입·여성전문 공공병원 건립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현장에서 신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실현 여부를 떠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선 성별에 따라 반응이 갈렸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신 후보의 연설을 지켜본 장모(20·남)씨는 빈부 격차를 줄이겠다는 공약엔 공감했지만, 페미니즘 공약에 대해선 거부감과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남성들의 반응을 신 후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신 후보는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분들의 반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젠더 불평등이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혜화역 유세에서는 여성을 위한 공약을 많이 강조했지만 기본소득이나 주거 문제 해결 등이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성평등을 실현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저에게 많은 분들께서 지지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길을 가다 멈춰선 배모(56·여)씨는 유세 차량에 오른 신 후보를 한동안 바라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배씨는 “정당과 후보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당찬 목소리, 일을 잘할 것 같은 똑 부러진 후보의 이미지가 발길을 멈춰 서게 했다”며 “여성을 위한 공약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이번 선거에서는 당선이 안 될 것 같지만, 공약들이 좋은 만큼 포기하지 않고 여러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훌륭한 정치인으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렸다”
이날 신 후보의 선거 유세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신난다’는 의미의 인터넷 유행어 ‘무야호’를 패러디한 ‘(신)지(혜)야호’를 함께 외친 선거운동원들은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유세 활동에도 지친 기색 없이 활기가 넘쳤다.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유진(23)씨에게 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었다. 4년 전 한 자원봉사 활동에서 신 후보와 만났다는 유씨는 “여러 정당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성이 떨어지고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의 정치인 이상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곳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고자 하는 신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에 가장 끌렸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