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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빚 없다" 무소속 나온 3년전 페미니스트 그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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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선거 벽보에 즐비한 12명의 후보를 보셨죠. 거대 양당을 빼면 낯선 후보, 작은 목소리들입니다. 중앙일보 2030 기자들이 3040 후보들을 만나봤습니다. 서울시민에게 전하는 그들의 신념과 열정의 출사표를 소개합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은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년 전 그 당돌했던 녹색당 후보는 기호 15번 무소속 후보로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신지예(31) 서울시장 후보 얘기다. 20대였던 그는 이제 30대가 됐지만, 12명의 서울시장 후보 중 최연소다.

[서울시장 3040 후보] #기호⑮ 신지예 무소속 후보

녹색당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째 출마 선언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정문 앞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정문 앞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이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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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난 신 후보의 손에는 명함이 두둑하게 들려 있었다. ‘기후위기 대응’ ‘성폭력·혐오 범죄 무관용 원칙’ ‘서울형 일자리보장 제도’ 등의 공약이 적힌 명함 속 신 후보 사진은 보는 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는 그의 출사표는 짧고 간결했다. “1번과 2번 사이에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기에 출마했습니다.”

신 후보는 “박영선 후보와 오세훈 후보는 절대 서울의 답이 될 수 없다”며 “이번 선거는 박원순 시장 성폭력 심판 선거이고 민주당 심판 선거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의 시간을 10년 전 오세훈으로 돌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 후보의 새로운 슬로건은 ‘당신의 자리가 있는 서울’이다.

명함을 받은 한 액세서리 가게의 점주 이모(48·여)씨는 “정권이 바뀌어도 서민의 입장에서 느끼기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정치를 좀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러한 젊은 세대들에게 눈길이 간다”면서다. 이어 “당선 가능성이 작더라도 이렇게 계속 시도를 하는 만큼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후보”라고 덕담을 했다.

“민주당에 빚 없다” 정권 심판 강조

지난달 31일 오후 5시30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인근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5시30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인근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신 후보의 이날 유세는 3년 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자처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남성 전용 미용실 ‘블O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가 명함을 나눠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신 후보는 “페미니즘을 기본 공약으로 삼으면서 이를 확장한 ‘연대’의 가치를 이번 선거에서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신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 공약 중 하나는 ‘2050년 탄소중립 도시’다. 2050년까지 서울시의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맞추겠다는 계획으로, 이를 위해 도시공원을 숲으로 재조성하고 도시농업 등을 확대하겠다는 주장이다. 이를 총괄할 부시장(기후위기생태전환 부시장) 자리도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신 후보는 “기후위기는 더는 ‘나중에’라며 미룰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독점한 서울을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도시로 바꿀 고민을 담았다”고 말했다.

무슨 연유로 무소속 출마를 하게 됐을까. 이에 대한 답은 ‘민주당에 빚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신 후보는 지난해 “부끄러운 위성정당 참여 명단에 녹색당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8년간 몸담았던 녹색당을 탈당했다. 위성정당에 참가했던 진보정당을 겨냥하며 “180석 슈퍼 여당 탄생에 기여했지만,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문제 등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제대로 심판할 사람은 무소속인 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새로운 선택지에 힘 모아달라”

지난달 31일 오후 7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시민들을 향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7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시민들을 향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오후 6시 회기역 거리 유세를 마치고 신 후보는 택시를 타고 건대입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엔 신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1대의 유세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핫핑크색 조끼를 입은 10여명이 합류했다. 신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팀(Team) 서울’ 멤버들이다.

도로 가운데 자리 잡은 유세 차량에 오른 신 후보는 마이크를 들고 횡단보도에 선 시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지난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 후보에 이어 4위에 올랐습니다”는 인사말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 후보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될 것 같은 후보가 아니라 돼야 하는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원순 심판에 공감, 정치적 기반엔 의문

지난달 31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신지예 무소속 후보가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녹색불로 신호가 바뀌어도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신 후보를 바라보던 대학생 최모(22·여)씨의 말을 들어봤다. 그는 “아직 20대 초반이라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모르지만, 박원순 전 시장을 심판하러 나왔다는 말에 특히 공감이 갔다”고 했다. 이어 “신지예 후보처럼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바로 잡으려는 정치인의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후보의 호소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 있었다. 건대입구역 4번 출구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며 신 후보의 연설을 지켜본 박모(48·남)씨는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행정과 정치가 모두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후보의 경력이나 정치적 기반이 얼마나 탄탄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 “힘들지만, 꼭 해야 할 일”

지난달 31일 오후 8시20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선거 운동을 하던 신지예 무소속 후보에게 빵과 우유를 건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8시20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선거 운동을 하던 신지예 무소속 후보에게 빵과 우유를 건냈다. 이가람 기자

연설을 마치고 유세 차량에 내려온 신 후보는 다시 명함을 들고 시민들을 찾았다. 오후 8시 20분쯤 30대 남성이 건대입구역 4번 출구 앞에서 명함을 나눠주던 신 후보에게 다가왔다. 그는 신 후보 손에 비닐봉지를 쥐여주고는 이내 사라졌다. 봉지 안에는 빵과 우유가 들어있었다. 신 후보는 “종종 선거 현장에서 간식을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큰 위로를 받는다”고 미소 지었다.

선거 유세 일정은 오후 8시 30분에 모두 끝났다. 거리두기를 강조하며 함께 응원 구호를 외치고 해산한 팀서울 멤버들은 11시간 뒤인 다음날 오전 7시쯤 출근길 유세 장소에 다시 모인다. 팀서울 멤버 김주영(22·남)씨는 “힘들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신지예 후보는 기존의 정치권에서 다루지 않던 성 소수자 의제나 기후위기, 그리고 차별·불평등 문제를 가장 제대로 짚고 있는 후보”라며 “유권자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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