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운 문화팀 기자
한(漢)나라는 신(新)을 기점으로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다. 신 왕조를 건국한 왕망은 전한 시대 명사였다. 명문가 출신인 그는 바른 행실과 검소함으로 존경을 받았다. 의복과 물건을 주변과 나누고 명사들과 교유하며 명성을 쌓았다. 이를 배경으로 황제의 장인이 된 그는 제위를 찬탈했다.
황제에 오른 그는 대지주를 성토하며 일정 이상의 토지는 농민에게 나눠주게 했고, 사사로운 토지 거래는 금지했다. 또 화폐 개혁을 단행하고 술·소금 등에 높은 세금을 매기게 했다. 그가 만든 민생안정책이었다. 그러나 물가가 폭등해 사회 혼란이 야기됐고, 결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유수도 이때 거병했다.
역지사지 3/31
왕망은 천명을 받들어 수명이 다한 한나라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실정은 한나라를 재건했다. 왕망에 대한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의 평가다. “탁상공론만 하며 결정은 하지 못했고 민생, 소송, 관리의 품행 등 급선무는 나 몰라라 했으니 실패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유성운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