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정합니까
그는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이 내부 정보로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보고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양씨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폭등한 부동산값에 돈 벌 기회를 놓치고, 누군가는 치밀하게 반칙을 한 덕분에 거액을 손에 쥐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빅데이터 1억건 분석
경제·정치 가치 중 ‘공정’ 비중 1위
각각 10→32%, 28→51%로 급등
조국·박원순·윤미향 논란도 영향
집값 폭등, 노동가치 추락에 분노
“청년층, 노력에 대한 대가에 민감”
‘사다리’ 사라지자 주식투자 몰려
김광두(서강대 석좌교수) 국가미래연구원장은 9일 “1970~80년대만 해도 불공정 개념은 사회적 강자의 비리·착취에 가까운 개념이었다”며 “그러나 현재는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문제를 포괄할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고 짚었다. 그는 “최근 LH 투기 의혹에 대중의 분노가 커진 것은 공정이라는 제일 민감한 이슈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가미래연구원과 전문분석업체 타파크로스가 2019~2020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빅데이터 약 1억1147만 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2019년 공정 관련 이슈의 ‘핵심 가치’ 비중은 전체의 12.9%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27.7%로 2배 이상으로 늘며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치·경제 분야에서 모두 핵심가치 1위로 꼽힐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정치 분야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빠 찬스’ 논란,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병역 특혜 논란이 대표적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문제,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 등도 공정이라는 뇌관을 건드렸다.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28.3%에서 지난해 51%로 절반을 넘은 배경이다.
30대 “LH 직원 치밀한 반칙으로 거액 버는 데 공포 느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결국 땀 흘려 번 월급의 가치, 노동의 가치가 갈수록 낮아지게 됐다”며 “서민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서민이 상대적으로 더 고통받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정책의 실패로 공정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 선회를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단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해 삼성·LG·네이버 등으로 퍼진 대기업 성과급 갈등에서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의 결과가 마땅한 대가로 돌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김용학 타파크로스 대표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막혔다고 본 20대의 공정에 대한 분노가 SNS 등을 통해 더 크게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저 계급론’으로 공정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고개를 들었다면,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은 공정에 대한 실천력을 갖게 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개인이 부동산·주식 투자로 몰린 것은 공정한 경제를 사회가 유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 것”이라며 “국가가 공정과 정의를 보장하지 못하다 보니 최근 이어지는 학교폭력 폭로처럼 개인 스스로 공정과 정의를 만들어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석했다.
◆어떻게 조사했나=2019·2020년 주요 SNS와 대중매체 등에서 화제가 된 7000개 이슈 가운데 1000개 이슈를 선정해 빅데이터 분석을 했다. 이와 관련된 총 1억1147만여 개의 반응이나 언급 등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핵심가치를 찾았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