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와 연결된다. 1초에 2~3m 정도의 속도로 플라스틱이 냇물처럼 흘렀다. 컨베이어벨트의 굉음으로 현장 근무자들의 말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약 25m 벨트 주변에는 11명의 직원이 서서 연신 플라스틱을 골라냈다.
예고된 역습, '코로나 트래시'
재활용 최후의 보루, ‘가제트 손’
실제로 한 사람이 눈앞에 나가는 4~5가지의 플라스틱을 순식간에 선별해 내고 있었다.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폴리스티렌(PS)을 선별해 냈다. 나상호씨는 5초 동안 플라스틱 6개를 선별했다. 오른손으로 지나가던 플라스틱을 집어 그의 오른쪽에 놓인 PP 수거통에 던졌다. 왼손으로 잡은 플라스틱은 왼쪽 PET 수거통에 넣었다.
“쓰레기 너무 많아 선별력 떨어져”
하지만, 선별장의 가제트들은 ‘코로나 트래시’로 최근 체면을 구기고 있었다. '배달 용기'가 급증한 탓이다. 안 대표는 "코로나 이후 쓰레기양이 너무 많아졌다. 인력은 줄었는데 선별해야 하는 양은 훨씬 많아져서 전보다 선별력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것도 쓰레기로 나가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의 최후의 보루인 ‘가제트 손’에도 과부하가 걸린 셈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배달은 2019년 동기대비 76.8% 늘었고 지난해 상반기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하루 평균 848t으로 전년 동기(733.7t) 대비 15.6% 증가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선별장은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할의 공동주택 플라스틱만 수거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1.5t 트럭이 하루에 적게는 10대, 많게는 15대가 들어온다고 했다. 하루에 15~22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직원 15명이 처리하고 있다.
배달 용기는 ‘귀찮은 플라스틱’
최근 소비량이 급증한 ‘코로나 트래시’ 배달 용기는 소비자들이 열심히 씻고 닦아서 분리 배출해도 재활용이 쉽지 않다. 잘 지워지지 않는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거나 혼합 플라스틱 재질(other)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동학 쓰레기센터장은 “일회용 배달 용기는 재활용하는 공정이 없어 그대로 소각장으로 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플라스틱이랑 다 섞여 있어서 한마디로 ‘귀찮은 플라스틱’”이라고 했다. 이 센터장은 “그래도 일단은 씻을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씻고 분리 배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 생각한 텀블러도 소각장 행
안 대표는 “환경 생각해서 텀블러 많이들 쓰라고 권했는데 지금 선별장으로 텀블러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며 “그건 재질이 단일화돼 있지 않아서 결국 다 소각장으로 간다”고 했다.
“재활용 잘 되는 제품이 잘 팔리게 해야”
분리 방법을 설명한 유투브 영상 등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지친다” “하라는 방식도 다르고 여기저기 말 다르다” “나라에서 정확한 기준을 안 준다” “세계 어느 나라가 우리 국민처럼 열심히 분리수거에 참여하느냐” “기업 등 생산하는 곳에서 먼저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소비자들은 재활용이 안 되는 것은 분리 배출하지 말고 쓰레기로 버려야 하고, 기업은 생산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재활용 잘 되는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구조로 가는 게 가장 좋다"고 제언했다.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병 보증금제 등 보증금도 대책 중 하나다. 홍 소장은 "보증금을 부과해 소비자들이 판매점으로 해당 용기를 돌려주고 판매점은 이를 수거해 그 제품 특성에 맞게 또 재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분리배출 기준이 제각각인 데 대해 홍 소장은 "필요에 따라 내용이 바뀌기도 하고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로 정보가 돌아다니다 보니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분리배출 기준을 총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온라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문희ㆍ최연수ㆍ정희윤ㆍ함민정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