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Mind Miner
정규 교육의 밀도 있는 수업을 받기 전의 아이들 역시 늘 새롭게 배우는 존재로 그 호기심은 수많은 질문과 함께합니다. “이건 뭐죠?”를 모든 사물을 접할 때마다 묻습니다. “밖에 나가려면 신발을 신어야 해”와 같은 생활의 방법들을 알려주면 “왜요?”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습니다. 하루종일 “왜요?”의 파상공격에 시달리고 나면 녹초가 되어 “그냥”이라거나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무성의한 답변을 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합니다. 답이 궁한 일도 꽤 있는데 나도 그 연유를 모르거나 혹은 행위의 불합리함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관행이 그러하기에 싫어도 따르고 있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인미답의 코로나 위기 속
관성 끊어내는 동기 만들어져
근원적 질문 고민해야할 때
빅데이터 1/29
그 모든 질문과 의심을 뒤로하고 다시 원론으로 다가와 ‘일하기 위해서’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집중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집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코로나 이후 회사로의 출근은 다시 해야 하는 일일까요? 방송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의 출연진 중 가족과의 삶을 위해 출퇴근의 수고를 감수하는 에피소드들이 보여지는데 이분들에게 지금의 재택근무는 축복과 같을 텐데 말입니다.
그 다음 “왜요?”는 어디로 향할까요? 재택으로 비대면 업무를 진행하며 일의 과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각자가 만든 자료들에 타임스탬프가 찍혀서 교류되며 ‘누가’ ‘무엇을’ ‘언제’ 했는지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누가 병목을 만들고 있고, 누가 기여가 많고 적은지 투명하게 보여지며 ‘관리’라는 업무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모두 함께’가 아니라 ‘모두 각자’ 일하는 체계가 만들어지면 자율권이 중시되고 개인의 역량이 요구되며 의사결정이 과학화됩니다. 무엇보다 각자의 기준으로 완성된 일들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왜요?”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이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레짐작 속에 더 나은 삶의 방식을 포기했던 혁신의 예비군들이 이제 속속 우리의 일상에 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누적된 변화의 점진적 수용은 그만큼의 형식과 관습을 낳았습니다. 환경의 변화로 그 관습이 효용을 다할 때, 그 혁신으로 기대되는 효율은 또 다른 혁신을 추동합니다.
이제 우리 삶의 모든 단계마다 5살짜리 어린 아이처럼 “왜요?”를 묻기 바랍니다. 그리고 답으로 “그냥”이라고, 또는 “그렇게 해 왔으니까?”라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가장 나쁜 답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가 아닐까 합니다. 이 경우 정당한 답은 그 연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일 자체를 고쳐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서로 원치 않는 일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선배 철학자가 이야기한 ‘최대 다수가 각자의 행복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라도 그 출발점인 “왜요?”의 생활화를 주장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