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은 이중처벌" "5인 미만도 넣었어야" 전문가도 불만

중앙일보

입력 2021.01.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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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놓고 재계와 노동계 모두가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국회 설득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노동계는 법 개정 운동에 나섰다. 중앙포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재계와 노동계에서 동시에 “산업 현장의 재해를 줄이는 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또 중대재해법의 국회 통과 직후부터 재계와 노동계가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국회가 공들여 입법했지만 재계와 노동계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중대재해법의 문제와 개선할 내용이 무엇인지 노동법·형법·산업안전 전문가에게 물었다.
 

사업주 의무 모호…죄형법정주의 어긋나  

①죄형법정주의 위배=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도 사업주에 대한 구체적인 의무는 없고 형벌만 높아 처벌이 잘 안 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범죄를 물으려면 무슨 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하는데 중대재해법은 그 부분을 모호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사업주의 책임 의무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법·산재 전문가 4인 의견 들어보니
"산업현장서 실효성 없어, 보완해야" 지적

실제로 중대재해법 4조는 사업주 등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적시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사업주 등에 어떤 행위를 해야 법을 위반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현장에서 작동한다"며 "공청회를 딱 한 번 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생긴 일인데,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졌지만 규범적 근거는 오히려 약해진 셈”이라며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맨 왼쪽)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가운데),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맨 오른쪽)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처벌 위해선 책임도 명확히 해야

②안전확보 책임소재 미흡= 최정학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안전사고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게 중대재해법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 책임자 범위를 너무 넓혀놔서 재계의 우려와 달리 실질적인 경영 책임자가 처벌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확보 의무를 지우고 있다.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는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경영책임자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기업의 오너 즉, 사업주가 처벌에서 제외될 빈틈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건설현장 발주처에 대한 안전의무가 빠진 것도 아쉽다”며 “발주처가 공기 단축을 요구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경우도 흔한데 이 때문에 발생하는 안전사고는 중대재해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한빛 PD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해도 현 중대재해법으로는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다”며 “향후 법 개정에선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사망도 중대재해법 처벌 조항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해 사각지대 생겨  

③5인 미만 적용 예외=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의 실효성을 확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교수는 “논리적으로 따지면 사고 발생률이 높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먼저 법을 적용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건 분명히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외를 둔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중대재해 발생을 막을 수 없다는 건 결정적인 흠결"이라고 했다.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79.8%를 차지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전체 노동자의 26.5%인 587만7128명이다.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비율은 전체의 20% 수준이다. 산업현장의 사망사고 다섯건 중 한 건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셈이다. 김 교수는 “법을 보완하는 게 최선이고, 아니면 건설협회 등이 자발적으로 사고 방지 매뉴얼이라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10일차를 맞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고 김용균 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이 구호을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돼 이중 처벌 위험  

④산업 현장 현실 반영 안 돼=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이중 처벌 문제도 지적했다. 1981년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법은 40년 동안 개정에 재개정을 거쳤고, 지난해에는 전면 개정됐다. 안전의무 시행규칙만 673개에 달한다. 박지순 교수는 “중소기업 중엔 산업안전보건법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를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법까지 더해지면 현장에서는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교수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경우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이, 업무상 과실 치사죄의 경우 일반경찰이 각각 담당했다"며 "중대재해법에서 안전사고 수사를 경찰에 맡겨 경찰 업무가 늘어나고 피의자 입장에선 이중수사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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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