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5)
문득 김종환이 쓰고 노사연이 불렀던 ‘바램’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어쩜 이렇게 늙어감을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늙어간다고 표현한다. 왜 나이 듦을 늙어가는 것이라고 통칭했을까? 아마도 썩어가는 것과 아름답게 익어가는 것을 함께 표현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썩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향기롭게 익어간다는 걸 싫어할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향기롭게 익어가는 사람과 추하고 역겹게 늙어 가는 사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장수 방송프로그램 중 하나인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의 주인공 역을 맡았고, 요즘은 인기리에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의 최불암 선생은 올해 나이 80이다. 31살 때 50대 중반의 수사반장역을 맡았고, 60대의 이장 역을 맡으면서 조로의 대명사(?)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늙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향기롭게 익어가는 전형이다. 그는 전원일기가 인연이 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40여년을 봉사하고 있다. 나는 욕심을 버리고 남을 도우며 함께 하고자 하는 그의 삶이 그를 젊게 활동하게 하며 향기롭게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키케로는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노년의 삶을 쾌락에서 벗어난 축복 받은 시절이라고 설파했다. 나이 들어감은 욕심과 쾌락을 내려놓고 향기롭게 익어가는 시간이다.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요즘 훈훈한 미담 하나가 전해진다. 바로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사연이다. 그는 지난 10년간 이맘때쯤 되면 매년 대구공동모금회를 찾아 1억여원의 거금을 익명으로 전달한다. 10년간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작정을 올해로 완성했다며, 이제는 이 성금 기부를 마친다고 하고는 끝까지 자신을 밝히지 않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나는 그가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인지, 정말 키가 크고 자신을 밝히지 않아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향기롭게 익어 가는 사람일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만 잘 살겠다고 자기 자식만을 위하겠다고 온갖 편법과 비리를 저지르고서도 관행이니, 음해니 하면서 온갖 구린내를 풍기며 썩어 가는 인사가 너무 많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만을 후손에게 보이니 오호통재다.
늙어간다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과정이라고 하면서 무의미한 시간으로 포기한다는 감을 갖는다. 그러나 익어간다는 것은 종말을 향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향기롭게 완숙해 간다는 능동 진행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누구나가 겪어야 할 늙어감이 썩어가는 구린내를 풍길 것인가, 향기로운 익어 감의 모습으로 보일 것인가는 앞의 두 사례를 통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향기롭게 익어가는 것과 구역질 나는 악취를 풍기며 늙어가는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쾌락과 욕심이라는 저울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우냐에 따라 썩어 감과 익어 감이 갈라진다. 키케로는 탐욕에 대해 “노년의 탐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그네 길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잣돈을 더 마련하려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라고 했다. 욕심을 버리고 후손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하는 말이다. 농익은 삶이란 향기로운 발효를 전제로 한다. 발효는 어울림에 있다. 어울림은 곧 ‘함께’다.
자신만을 위한 욕심과 쾌락 추구를 벗어 버리는 순간 키케로가 얘기한 향기로운 인생 후반부는 시작된다.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다른 막을 훌륭하게 구상했던 자연이 서툰 작가처럼 마지막 막을 소홀히 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키케로의 또 다른 말이다.
나의 인생 후반부는 썩어가는 것일까, 익어가는 것일까? 아니 썩어 가려고 할 것인가 익어가려고 할 것인가? 노사연의 ‘바램’을 다시 들어보며 내 삶을 가늠해 본다. “우린 늙어가는(썩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그 멋진 삶은 봉사와 기여와 공헌으로 함께 하는 삶에 있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