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열정이 식는다고요? 늙어가는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02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3)

늙어 간다는 것과 나이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동의어일까, 아니면 별개의 현상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아이도 알 만한 이 사실이 가끔은 혼란스럽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숫자로 가늠되니 알겠는데, 늙는다는 것은 어떤 현상에 비추어 그런 것인가에 대한 모호함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살이 생기며, 모든 행동이 굼떠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가를 생각하면 나이가 비교적 적은 사람 중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니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걸 보면 싫어하는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고, 원인을 알아야 그 속도를 늦추거나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는 늙어간다는 것을 열정이 식어 가는 현상으로 평가한다. 인생 환승 후 지난 10년을 회상해 보면서 세월의 빠름에 끔찍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10년이 또 그렇게 빨리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의 끔찍하다는 표현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단순히 지나가는 시간이 무의미하거나 불행할까 하는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미래에 돌이켜 보아 후회하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각오에서다. 지나간 세월보다는 더 잘 살아야겠다, 내가 더 잘 살아야겠다는 것은 경제적 여건이나 명예, 지위가 지난 세월보다 더 나아져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열정이 식은 삶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지남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식으면 매사가 귀찮아지고 모든 일이 심드렁해지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조차 싫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소일거리 없이 하루종일 지하상가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들. 열정이 식으면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다. [사진 한익종]

소일거리 없이 하루종일 지하상가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들. 열정이 식으면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다. [사진 한익종]

노인 요양기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된 특징은 참여하는 노인이 귀찮아하며 프로그램의 진행시간도 현저히 짧다는 것이다. 진행자의 말에 의하면 어르신이 금방 싫증을 느껴서란다. 왜 금방 싫증을 느낄까? 빨리 싫증을 느끼는 것은 어린아이도 같다. 그러나 어린이는 새로움을 찾기 위해 하던 놀이에 금방 싫증을 느끼지만 노인의 경우는 귀찮아서인데, 그 원인은 열정에 있다. 어린이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이지만 어른의 경우는 열정이 식어서다.

자신이 매사가 귀찮아지고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으며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한다면 늙었다고 여기면 된다. 그 얘기는 열정이 식었다는, 또는 식어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반대로 늙어가기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정을 이어가면 된다. 열정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홀로 외로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은퇴 후 나이가 들면서 사람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갈 곳도, 찾는 이도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먼저 찾아가는 일인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봉사와 기여다. 나이가 들어 노력 봉사도 힘들고, 경제적 여력도 없어 기부도 못 하고, 재주가 없어 재능기부도 못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순간 모든 열정은 냄비의 온기처럼 급히 사그라들고 쉽게 늙어지는 것이다. 핑계는 핑계를 낳는 이치와 똑같다. 무엇 때문에 봉사를 못 한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핑계는 결국 자기 합리화인데 이 세상 어느 누가 늙어가는 것의 합리화를 추구할까?

늙어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열정이란 놈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자가발전을 시켜주지 않으면 급격히 사그라지는 속도를 높이는 못된 성질을 갖고 있다. 주위에서 은퇴 후 갑자기 늙어졌다는 말들 듣는 사람을 관찰해라. 아니, 자기 자신이 급격히 늙어감을 느낀다면 열정이라는 놈을 찾아봐라. 인생 후반부 가장 중요한 버팀목은 열정이라고 본다. 열정은 필히 상대를 수반한다. 홀로 열정을 불사르는 것은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사람이나 독특한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얼마 전 작고한 94세의 현역 최고령 의사셨던 한원주 원장이나 100세를 살아보니 인생을 알겠노라고 하는 김형석 교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함께 하는 삶의 태도였다. 이웃과 함께, 사회와 함께 자기 일에 대한, 삶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인생 후반부 행복한 삶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이웃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공헌이 꼭 필요하다”는 김형석 교수의 말씀은 일종의 신앙 간증이었다.

홀로 쓸쓸히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 열정은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데서 더욱 활발히 분출된다. [사진 한익종]

홀로 쓸쓸히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 열정은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데서 더욱 활발히 분출된다. [사진 한익종]

늙어간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우리는 단지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어느 작가의 말마따나 오늘을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열정을 식히지 말자.

지금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에 따른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이 후유증의 발단은 자기만이 옳고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역사상 4선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든 부인 엘리어 루즈벨트는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이지만 아름다운 늙음은 노력”이라고 말했다. 노력은 열정이 식으면 할 수 없으며 열정은 ‘함께’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나 늙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고 누구나가 겪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이가 든다는 것에는 관대하면서 늙어간다는 것엔 왜 신경질적일까? 바로 ‘아름답게’라는 부사어가 붙기 때문이다. 추하게 늙을 것인가, 아름답게 늙을 것인가가 관건인데 아름답게 늙으려면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회에 대한 기여로 ‘함께’ 한다는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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