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의 ‘묻지 마 공수처 출범’에 동의해 준다면 우리 모두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성탄 전야인 지난 24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 후보 추천위 일부 위원에게 보낸 편지에 “(추천위가) 서둘러선 안 된다”며 이렇게 적었다. 야당이 공수처 출범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자 꺼낸 읍소 전략이다. 이 편지는 7명의 추천위원 가운데 2명의 여당 측 위원을 제외한 나머지 5명에게 전달됐다.
앞선 회의에서 두 사람은 김경수ㆍ강찬우 변호사 등 야당 측이 추천한 인사들에게도 표를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주 원내대표는 편지에 “역사와 국민 앞에 당당한 결정을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썼다.
이와 별도로 주 원내대표는 추 장관의 추천위 불출석도 요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27일 오후 기자 간담회를 열어 “추 장관의 불법과 독주가 법원의 판결로 확인됐다”며 “(대통령은) 당장 장관직 사표를 수리하고, (추 장관은) 내일 공수처장 추천위에 출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의 효력을 법원이 막아선 것의 정치적 효과를 공수처 출범 저지로 이어가 보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측 위원인 박경준 변호사는 27일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추천위는 국회의장에 의해 위촉됐지만, 엄연히 독립적인 지위에서 후보 추천을 하는 것”이라며 “(주 원내대표가) 추천위원에게 편지라는 형식으로 무언의 압력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보낸 것은 추천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與 “공수처장 추천”, 野 “법적 대응”
추천위에선 앞선 회의에서 가장 많은 5표를 얻었던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전현정 변호사, 4표를 받았던 이건리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중 2명이 문 대통령에게 추천할 2명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법사위원은 “지난 18일 추 장관이 추천위 연기를 요청해 한때 추 장관이 직접 새 후보를 추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새로운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며 “기존 다득표자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 측 동의 없는 후보 선정 의결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힘 추천위원인 이헌 변호사는 오늘 입장문을 통해 “야당 추천위원들은 종전 회의에서 전 변호사와 김 연구관에 반대표결을 했었다”며 “28일 회의에서 이들이 공수처장 후보로 선정된다면 위헌적 개정 공수처법에 따른 위헌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결에 대해 행정소송과 가처분 및 위헌법률심사제청 등으로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정ㆍ김홍범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