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에서 만난 박혜상은 “지금도 궁금하다. ‘내가 왜 여기있지?’ 하고 묻게 된다”고 했다. 그는 “노래가 좋고 편했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상황은 그의 말대로 “물 흐르듯이”일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노래는 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최악의 슬럼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DG의 깜짝 발탁 이전에 고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어드 재학 중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신진 음악가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가 기억하는 최악의 슬럼프는 바로 이 때 왔다. “‘내가 여기 있을 자격이 없는데’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어느 순간 과부하가 왔다.” 오페라단에는 훌륭한 성악가가 많았고,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감이 무너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소리도 안 나더라”고 했다. 당시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이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을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한 후 노래를 쉬었다. 박혜상은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나는 충분히 괜찮다(I am enough)’라는 문장을 쓰라고 했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완전히 무너지고 나를 다시 보게됐다”고 했다. 늘 가정법을 써서 말하던 그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문장이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해보자고 마음 먹게 됐다.”
그때부터 좋은 일이 생겼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데, 이탈리아어 발음이 어떻게 완벽하겠어?’ ‘노력했는데도 안되면 할 수 없는 거지’라고 마음 먹기 시작했다. 2017년 오페라 ‘루살카’의 숲의 정령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고, 같은 해 ‘피가로의 결혼’ ‘헨젤과 그레텔’에서 각각 바르바리나, 이슬 요정이라는 작은 역을 맡기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총감독인 피터 겔브는 당시의 무대에서부터 그를 눈여겨봤고, 올해 12월 예정됐다 코로나19로 취소된 ‘헨젤과 그레텔’의 주역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의 박혜상의 활약을 들은 DG의 회장이 지난해 그의 노래를 확인하러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 직접 간 일도 일어났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