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자백과 모순되는 증거가 없는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피고인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50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노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천지방법원 표극창 부장판사의 지적이다. 표 부장판사는 A씨(76)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직전 검찰과 경찰을 향해 일침을 놓았다. A씨의 범행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본인의 자백과 A씨 딸의 진술뿐인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더욱 신중히 수사했어야 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표 부장판사는 “그래야만 판결이 확정된 후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국민의 의혹을 차단할 수 있고 수사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①피의자 만취 상태였을 가능성 작아
[이슈추적]
검찰은 사망 당시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토대로 범행 시점에 B씨가 만취 상태였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 딸이 본인이 귀가한 오후 9시20분 이후에는 B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했고, B씨 남매가 다투던 중 B씨가 과거 사건과 현재 상황을 언급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B씨가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②어머니의 어색한 범행 재연
표 부장판사는 “B씨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A씨 딸의 진술 등을 볼 때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A씨의 진술은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기억이 잘못됐다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또 “A씨가 범행 재연 과정에서 목을 조르는 동작을 취하라는 요구에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점을 봐도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진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③노모의 살해 동기도 의문
④깨진 술병은 누가 치웠나?
B씨가 소주병 파편에 다친 부위도 수상했다. A씨의 말대로 아들이 쓰러진 뒤 소주병 파편을 치웠다면 위치상 B씨는 다리가 아닌 상체에 상처를 입어야 했다. 표 재판장은 “만약 A씨가 소주병 파편을 치운 후에 신고했다면 B씨가 이날 오전 0시 30분 이전에 가격을 당했을 수 있고 제삼자가 현장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면 의도적으로 허위진술을 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자백과 A씨 딸의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고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기록과 판결문 내용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피고인의 자백과 관련 가족의 진술이 있음에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해서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만큼 피고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재현과정이 부정확해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항소심에 간다면 재판부가 피고인의 진술을 다시 들여다보겠지만 1심 재판부가 오래 고민했던 만큼 판결이 바뀔 가능성도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