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지도 출산하지도 않는 신부들이, 낙태가 눈 앞에서 강론을 듣는 ‘자매’들에게 얼마나 익숙한 경험인지 상상도 못 하는 신부들이, 함부로 죄를 이야기하는 오만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천주교 신자·세례명 구네군다)
낙태죄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신도 1015명의 선언문 중 일부입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선언문 대독을 진행했는데요. 천주교가 주장하는 ‘생명권’에는 여성의 삶이 배제돼 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 낙태'죄'를 둘러싼 더 자세한 이야기,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보다 4주를 더 줄인 임신 10주 미만까지만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은 “태아는 임신 10주까지 대부분의 장기와 뼈가 형성돼 태아가 성장할수록 과다출혈, 자궁손상 등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밝혔죠.
종교 신자들 모두 임신중단 ‘죄’로 볼까
[밀실] '낙태죄'와 종교
그렇다면 신자들은 종단과 마찬가지로 임신 중단을 모두 ‘죄’라고 볼까요?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5명의 개신교, 천주교, 불교 신자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미안한데 나도 생명” 다른 목소리 나와
"생명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낙태는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처음으로 생겨난 존재만 생명인가요. 미안한데 나도 생명이거든요." (개신교 신자 김은선씨)
제각기 다른 종교를 믿지만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신자들은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모태신앙인 개신교 신자 김은선(35)씨는 “국가가 여성을 위한 사회적 보장을 마련하기보다 오히려 그 책임을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4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이 나던 그날, 김 씨는 헌재 앞에서 기도회를 열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임신중단은 여전히 ‘죄’로 남았습니다.
김씨는 "낙태죄를 유지하게 되면 여성이 임신중절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게 아니라 불법적 낙태 시술을 받아 평생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다"며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서 여성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도 생명권에서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태아를 지킨다고 말하는데 대체 누구로부터 지킨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약자 위한다는 종교, 원치않는 임신 여성 헤아려야”
종교가 약자를 위한 것이라면 태아만큼이나 원치 않는 임신을 겪은 여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 황모(25)씨는 “매년 임신해서 (아이를 지우려) 계단에서 구른 중학생의 이야기나 수학여행 휴게소에서 혼자 출산하고 아이를 두고 갔다는 등의 뉴스를 너무 많이 접했다”며 “그 친구가 겪었을 불안함을 생각해보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그 사람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죠.
불자인 박모(21)씨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씨는 “불교의 오계(五戒)중 하나가 불살생(不殺生)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도 자비의 사상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세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교계 여성권익 연대체인 성평등불교연대도 헌재 판결일에 "더 이상 여성만을 억압하는 ‘낙태죄’는 없다"는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임신 중단? 개인 신념 문제, 법적 처벌 말아야”
지난 7일 정부가 발표한 낙태죄 입법예고안은 여전히 찬반 양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여전히 낙태죄가 남아있다는 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요. 종교계 등은 정부가 사실상 낙태를 전면 합법화했다고 비판하죠. 인터뷰 마지막, 낙태죄를 찬성하는 종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이야기가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는 이야기를 교회나 성당에서 많이 하는데요, 우리는 모두 태아였기도 하지만 여성의 삶과 여성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또한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꼭 전해주고 싶어요.” (실비아)
낙태죄 논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최연수·박건·윤상언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 백경민, 김현정·이시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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