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해당 기업들은 왜 해당 제품이나 영상을 내렸는 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공식 입장을 내면 오히려 네티즌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업계에선 본다. 이들이 발 빠르게 BTS 삭제에 나선 건 사드 보복에서 얻은 경험칙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사드 보복이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에서 결국 철수해야 했다. 롯데그룹의 중국 진출 전초기지 역할을 맡던 롯데마트는 중국 내 일부 매장에서 발전기를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기업의 한 임원은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는 게 사드 보복에서 한국 기업이 얻은 교훈”이라고 말했다.
BTS 사태, 장기화는 안될 듯
이번 사건은 어떻게 전개될까. 중국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드 보복 때와는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달라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중국학) 교수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한국 반도체가 꼭 필요한 중국 정부 입장에선 네티즌 사이에서 이어진 한국 불매운동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국 외교부가 12일 오후부터 사태를 가라앉히는 내용의 논평을 내놓고 중국 네티즌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는 것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 네티즌의 반응에 주의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평화를 아끼고 우호를 촉진하는 건 우리가 공동으로 추구하고 공동으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전 세계 반중국 정서를 우려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반한 감정을 조장하진 못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갈등, 코로나19 등으로 국제적인 우호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중국 입장을 보자면 아미(BTS 팬덤)를 적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봤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고민이 깊은 건 BTS 사태와 같은 사건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중국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가 힘을 얻어가고 있어서다. 사드 보복 피해를 본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선 광고 모델을 선정할 때도 정치적 성향까지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만일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한국 기업에 냉정한 대응을 할 것을 주문했다. 섣불리 액션을 취하지 말고 일단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BTS 광고를 곧장 삭제한 건 중국 네티즌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지 못했다”며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BTS 사태와 같은 사건이 반복될 경우에 대비해 정부 공공 영역과 기업으로 대표되는 민간 부문을 분리해 투 트랙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준영 교수는 “정부는 물밑 외교력으로 중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며 “그게 바로 외교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정치와 최대한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